뉴로즈 호텔

Walkabout / 워커바웃

ducja 2014. 8. 8. 03:13



나에게 비주얼쇼크를 준 영화감독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이름을 잊지 못하는 감독이 니콜라스 뢰그이다.

1970년에 만든 데뷔작 <퍼포먼스>는 많은 비주얼리스트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비주얼의 완성에 정점을 찍은 영화였다. 뚜렷한 줄거리가 없기도 했었지만 과잉생산된 이미지들이 주는 짜릿함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모든 장면을 그림으로 바꾸고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고 곧 그것은 무의식속에 내가 이루고싶은 작품의 완성도에 힘을 싣어주는 근거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 다음해에 발표한 <워커바웃>은 아트시네마에서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뢰그의 영화는 워커바웃이 처음이었는데 그 때까지 나는 내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상과 맞닿은듯한 느낌에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었다. 내가 알고있는 감정들은 숫자 100으로 따지면 겨우 5에도 다다르지 못할 정도의 적은 수였다. 경험이라는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가치가 있는 것이므로 나는 이 경험을 할 기회를 준 뢰그에게 감사했다.





내용은 별로 어려울게 없다. 호주의 토착 원주민인 애보리진 소년이 성인식을 맞아 워커바웃을 나온 곳에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녀와 그의 남동생을 만나는 이야기다. 인생에서 이런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는 사람이 이 넓은 세계에서 얼마나 될까? 이 영화는 그 어린 시절의 겪었던 한 번의 경험을 추억하며 당시의 체험을 우리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이미지로 결합되어 있는 익스페리언스 무비이기도 하다. 내러티브랄 것이 없어 다소 불친절한 영화로 화자되기도 하지만 딱히 설명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막, 그러니까 오지에서 생존해야하는 것이 애보리진 성인식의 규율. 어린 소녀는 아버지를 잃었고 남동생을 데리고 이 긴 터널같은 곳을 지나야 한다. 나름대로의 섹슈얼한 이미지들도 나열되기는 하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지는 않다. 도시에서 지내던 소녀가 자연에 동화되어 옷을 벗고 수영을 하는등. 자연 상태 그대로 소녀에게 아름다움을 느껴 구애를 펼치는 소년의 모습은 섹슈얼하다기보다 현대예술을 보는듯하다.

나는 이 검은 피부를 가진 소년에게 완전 매혹되었는데 그의 두꺼운 가죽위로 흐르는 땀이 하나의 그림이 되고 예술이 되더라. 춤을 출 때는 거의 너무 흥분되서 가만히 앉아있을수가 없을 정도였다. 벌거벗은채로 야생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도 매혹적인 일이다.




시각적으로 즐거운 장면들이 매우 많은데..이 영화 전에 찍은 퍼포먼스는 워커바웃 이후에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도 만만치 않았다. 뢰그가 직접 촬영을 했다는데 이사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예술가가 아니라 멍청한 자식 정도로 분류됬었는데 포스트모던 아트나 현대미술이 엉망진창이 된 지금은 이런 영화로 스타일리시하다는 미명하에 파인아트 정도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나 <돈룩나우>의 경우도 공개 당시에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나는 그의 영화 거의 전부를 사랑한다. 조셉 로지와는 전혀 다른 짜릿함을 준다. 그런데 두 감독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 테크닉만 놓고 보면 뢰그 수준의 감독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게 유머포인트일까.






그냥 오늘 이 영화가 문득 많이 생각나서..내일 퍼포먼스나 비디오로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