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새로운 사람이 되어갈때..
나는 사실 새로운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얼마전 본 바더 마인호프 콤플렉스를 보고 나서도 불의를 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고 마더를 보면서는 좀 더 꼼꼼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영화란 매체는 미디어가 가진 영향력 중에서도 프로파간다 능력에서 1등인 매체다. 사람들은 감동적이거나 교훈적인 영화를 본 후 극장을 나서면서 내일부터는 새로운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고 사랑 영화를 본 후에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좀 더 충실하고자 결심한다. 과연 그 다짐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졌을런지...영화 최면의 마술은 극장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되는데 영화의 내용을 곱씹고 메모하고 분석하는 습관들이 영화를 보는 눈을 다각도로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이요 냉철한 이성을 되찾게도 해준다.
세상엔 교훈적이며 교육적이고 선동적인 좋은 영화들이 너무 많이 있지만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준 영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빌리 엘리어트다. 중학생이었을때 영화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용돈을 생기는대로 모아 주에 1번 혹은 2주에 1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당시에는 친구 정도를 제외하곤 우리 동네 극장엔 그다지 선정적인 영화는 별로 걸리지 않았다. 중2 겨울 방학의 막바지. 개학을 곧 앞둔 나에겐 세뱃돈이 어느 정도 있었고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와 난 종종 동네 극장에 패스트푸드점에서 파는 감자를 사들고 영화를 보곤 했다. 평일에 가면 정말 한산했기 때문에 우린 극장을 거의 전세낸 정도로 즐길수 있었다.
운명의 그 날도 역시 나와 친구는 어떤 영화를 볼 지 고민했다. 난 다른때만큼은 의견을 내세우는법이 없지만 영화를 고를땐 전적으로 내 의견이 중요시된다. 나는 보고싶은 영화는 꼭 봐야하고 보기 싫은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나의 적극적인 공세로 우린 빌리 엘리어트를 보게 되었고 우리를 포함한 관객수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좌석에 몸을 구겨넣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곳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나는 중3,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도 읽었지만 꿈이라곤 없고 중학교마저 자퇴하고싶은 심정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저주했다. 난 고작 13살이었다. 그렇지만 빌리는 달랐다. 아버지와 형은 파업중이고 자신은 남자다움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빌리는 형의 레코드판을 몰래 돌리며 춤을 춰댔다. 마치 세상에 이것밖에 없는것처럼 들판을 달리고 길거리에서도 춤췄다. 그리고 결국 해내고 말았다. 아버지는 동료들의 눈총을 사며 공장으로 돌아갔고 빌리의 학업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는 완고한 아버지를 굴복시킨 것이다. 이것은 내게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어본적없는 훌륭한 조언을 빌리가 해준것이다!
네가 하고싶은게 있다면 넌 우선 부모님을 설득해야 해, 우선 그 산을 넘으면 네겐 노력이라는 기회가 주어지지.
자극 받았었다. 정말로 큰 자극이었다. 같이 본 친구는 지루하지 않을 정도고 괜찮았다뿐이었지만, 난 그 영화를 보고 짜릿할만큼 행복했다. 그리고 나의 긴 투쟁은 시작되었다. 항의라는것은 내가 그 의견에 반대한다는것을 관철시키는것이고 저항이란것은 어떤 세력이나 굴러가는 힘에 굴복하지 않고 반대하는것을 말한다. 저항은 행동이었다. 나는 내 의지로가 아닌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할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모르거나 모른체하고 산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저항과 충돌의 역사로 이루어져야한다. 끊임없이 내 운명에 질문해야 하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것은 스스로 손에 쥐어야 한다. 나는 고집이 세고 완고했다. 다른 것만큼은 모두 져줄수 있지만 내 운명만큼은 남들 손에 굴리고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투쟁의 대가를 얻었고 저항의 달콤한 맛을 보고 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때가 우습기도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성냥갑같은 곳에 갇혀 끔찍한 인생의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감사한다. 내가 이 아이의 춤추는 모습을 보게 된 것에. 빌리가 내게 온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