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로즈 호텔

시넥도키 뉴욕을 보았다.

ducja 2009. 8. 21. 02:04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 시넥도키 뉴욕을 블루레이로 보았다. 개인적으루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선샤인, 어댑테이션, 휴먼 네이쳐를 쓴 찰리 카우프만을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 굉장히 보고싶었는데 주인공도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라 얼마나 나락을 걷는 영화일지 궁금했다. 드디어 보았다.
나의 뇌를 파보면 아마 지금쯤 척수고 뇌관이고 뭐고 다 케이블선이 지저분하게 엉켜있는것처럼 얽혀있지 않을까. 나 지금 굉장히 머릿속이 복잡하거든. 그런데다 이런걸 봐버렸으니 말 다했지. 더욱 더 꼬여가고만 있다. synecdoche. 첨엔 사이넥더치라고 읽어야 하나? 했는데 미국 발음으로 찾아보니 씨넥덕히~라는 식으로 발음하더라. 시넥도키의 뜻은 일종의 '메토니미'다. 일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대신하거나 전체를 가지고 일부를 대신하는 은유법을 뜻한다. 돛으로 배를 나타낸다던가 왕을 왕관으로 나타낸다던가하는식의.
난 이 영활 보고 바로 스파이크 존즈가 연출하고 그가 썼던 어댑테이션을 떠올렸다. 물론 존 말코비치 되기도 떠올랐고. 이 사람 방식은 속일수가 없다. 비틀어지고 꼬임의 연속인 그의 영화에서 템포를 놓치면 따라가기 어렵다. 극작가인 케이든이란 남자가 있다. 어느날 아침 그는 면도를 하다 터진 수도관때문에 이마를 다치게 되고 급기야 자신의 동공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재미있는점은 영화 초반부터 신문의 부고란을 부각시키며 이 영화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란걸 알려주고 있다.
위키백과에서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를 검색하면 이런 뜻이 나온다. 존재하진 않지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것을 말한다고. 시뮬라시옹은 그런 시뮬라크르가 작동하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다 라고. 철학자들의 말을 살펴보면 시뮬라크르는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 만들어진 인공의 그것이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인공의 이미지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설명한다.
이 영화를 보면 시뮬라크르 개념 사이에 줄을 타는 케이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찰리 카우프만이 만들어낸 겹겹의 세계에서 케이든은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4살의 딸 올리버와 아델의 망령, 그리고 젊은 날의 헤이즐에게서도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
왜 나는 이 영화에 반했는가.
특별히 감수성이 풍부해서 자주 감성적이 되어 울곤 하지만 케이든이 사람들이 죽어간 텅 빈 인공의 거리에서 백발이 된 채로 느릿하게 걸어가는 모습에서 울음이 터지지 않을수 없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21세기는 자기 피알 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실체없는 이미지나 광고에 현실을 맞춰 살고 있지 않나? 꾸밈없는 실제의 삶을 살며 솔직한 본연의 모습을 한 인간을 찾기가 어렵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리고 당신은 화려한 간판과 커다란 브랜드에 자신을 맞춰 살고 있진 않은지? 티비를 보고 있는게 아니라 티비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것은 아닌지?
딸도 잃고 부인도 잃고 재혼을 하고 또 딸을 낳았지만 모든 것에 실패한 케이든. 그에게는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점점 인공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인공에 맞춰 바뀌기 시작한다.
솔직히 엄청 끔찍했고 무서웠다.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는지 슬펐는지 겹겹히 쌓인 주름 위로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슬펐고 자신만 남기고 사라져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는것도 끔찍했다.
찰리 카우프만의 철학은 실존적이고 두렵다. 바로 자기 자신을 봐야한다고 충고하는것 같아서 머리가 어지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