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일 하루에도 세 번씩 바뀌는 기온과 잦은 여진으로 체력관리 못해서 바닥을 기어다닌건 내 탓이니까 지끈지끈한것도 내 탓,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게 가뜩이나 마땅찮은데 입맛이 돌지 않는 것도 내 탓, 이제 한 달 있었는데 벌써부터 homesick? 은지한테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는데 사실 가족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친구들은 내가 없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해 살겠지만 당장 내가 없으면 가장 허전할 것도 내 가족이고 나를 가장 긴 시간동안 그리워할 것도 내 가족인데 내가 가족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너무 많이 가지고 태어나서 너무 많이 붙어버린 욕심을 떨치기가 어렵다.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것도 행운, 우리 엄마가 나를 낳기로 결심한 것도 행운, 우리 아빠가 구두쇠처럼 악착같이 모아서 집을 산 것은 노력 그리고 약간의 행운, 꼼꼼한 언니가 나보다 1년 3개월 먼저 태어난 것도 약간의 행운. 살다보면 마치 당연한듯이 여기는 것도 모두 운이 좋아서인줄 인간은 모른다. 가진것 모두가 가족의 축복과 행운인 것을..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조금씩 깨닫고 있다니..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비자갱신때문에 다시 한 번 가족을 달달 볶았던 나를 망치로 때려부숴버리고싶은 순간이다 지금은..아침부터 이젠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의 엄마곁으로 돌아간 친구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이 콧물이 되어 턱끝까지 차고 말았다. 왜 나는 보이지 않는 매듭을 만지며 의지를 다지고 강한 인간이 될 것을 약속하지 못하고 바람 잘 날 없이 작은 것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인간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약한 인간이니까 그렇겠지? 엄마가 나에게 해 준 것 이상의 보답을 하려면 죽기 전까지 무리일지도 모른다. 아니 무리라고 생각한다. 남은 인생을 다 받쳐도 절대로 무리다.
중학교때가 지금까지의 짧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한다.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도 그렇고 학교에서의 문제도 그렇고 인격적으로도 아마 다시 없을 파탄의 시간이었을텐데..그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내 어머니가 있었기때문이다. 제멋대로 하고 사는 주제에 엄마가 응석부리는걸 받아주지 않는다고 이기적으로 굴었던 것 무릎꿇고 사과하고싶어진다. 그 때는 아마 우주의 중심이 나이고 세계의 중심이 나였을 것이다. 학교가 너무 가기 싫어서 일부러 다리를 다쳤던 적이 있다. 14년의 인생을 산 고집불통 꼬마가 엄마 손에 이끌려 2교시가 시작될 즈음에 겨우겨우 학교를 간다. 이제 막 여름이 시작되려고 하는 미적지근한 날씨, 엄마는 인생에 네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 땐 몰랐지 교복을 벗으면 나는 어른이고 내가 어른이 되면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세상쯤이야 내 멋대로 휘둘려질 줄 알았던게 그 때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중학교도 자퇴하고 싶었지만 당시 우리 아버지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혈기왕성 다혈질이셨다. 사사건건 아버지와 부딪혔던 나를 타이르기도 하고 조금씩 원망하기도했던 엄마에게 아직까지도 미안한 일이 너무 많다. 고등학교때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다행이 좋은 친구들을 만나 많은 변화를 겪고 인생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친구인 영화와 문학을 만나 사나운 짐승이 묘하게 고상해지기도 했었다. 물론 말괄량이 성격파탄자인 것은 변함없지만 말이다.
지금 엄마 그리고 가족이 너무 많이 생각나는 이유는 너의 이야기를 들었기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지금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당신은 (네팔이나 부탄이라 생각하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하며 제대로된 어른으로 가족과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며 친구에게 호의를 베풀줄 알고 신의 축복을 감사하게 여기며 작은 것도 소중히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서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시기를 거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가령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예민한 나를 아빠가 신경써주는 마음같은 것은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여기에 온 것만으로도 두 분께 평생치의 감사를 드려야한다는걸 안다. 나보다 더 부족한 사람, 더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도 어렵게 하루를 살아가고 자신과 싸워 이겨내는 것도 알고 있다. 나보다 더 많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 일본에 올 수 있게된 것 만으로도 두 분께 감사를 드린다.
엄마는 살아가면서 뒤에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서 마주한 난관보다 더 많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것들을 잘 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하는 인간이 되어야하며 두 분께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위해선 작은 문제에 대해선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기르고 감정적인 문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강한 마음을 가꿔야하고 지혜와 용기도 지금보다 열 배, 백 배는 더 단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다들 잘 살아갈 것이다. 연애 문제에 고민하느라 밤을 새기도 하고, 어려운 공부에 땀을 흘리며 고민하기도 하고, 취직이나 결혼같은 중대하지만 결코 무거운 것만은 아닌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미래를 바라보며 잘 살아갈 것이다. 나는 더이상 과거에 매달릴 필요도 없고 한국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거나 마음 쓸 필요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살면 그만인 것이다.
앞으로 여기에서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도 가족이고 내가 흔들리지 않게 다잡을 인내심을 주는 것도 가족이고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 모든 과정에 녹아들어와 있는 것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 언니, 그리고 나의 작은 요정..
간혹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나카노나 코엔지에 갔다가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거나 할 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거실에 불이 켜져 있고 아빠는 좋아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보고 있을 것 같고 언니는 방문을 닫고 공부하고 있을테고 엄마는 빨리 문을 열라고 두드리는 나를 타이르며 잠깐만 기다려라고 얘기하고 천천히 문을 열어줄 것 같다. 그리고 그 밑에 나의 작은 요정이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앞으로 외롭고 쓸쓸한 날이 수없이 더 많이 찾아오겠지만 이제 그런 것은 문제없다. 두 분께서 주신 축복이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까. 항상 나를 생각하고 매일 매일 내가 잘 되기를 빌어주는 사람이 두 분이나 계시니까, 내가 여기서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 바다 건너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분들이 계시니까 많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도 절대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이들에게 신의 축복과 가호가 함께하기를, 더불어 그들이 나를 천대하고 깔아뭉개도 나는 그들을 감싸안을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주시길 부모님께 염치없지만 한 번만 더 부탁드려본다. 상처로 얼룩진 사람을 사랑으로 안아주고 죄로 뒤덮인 사람도 사랑으로 대하고 멸시와 이기심, 아집과 해악으로 가득찬 사람마저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그리고 매일 자신과 싸워야하는 나에게도 큰 용기를 보태주시기를...

몇 일 간의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있어 먹구름 낀 오후에 코 앞에 사는 맨션의 행복하고 따듯한 가족을 바라보며 쓴다. 맛있는 식사 되시길, 그리고 모두에게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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