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미국 역사를 들먹일때 매카시 광풍이란 말이 쓰이기도 한다. 이 매카시의 매카시란 조지프 매카시란 인간의 이름으로 1908년에서 1957년까지 산 정치가이다. 그는 그 이전까지 유례없는 반공 운동과 빨갱이(?) 색출 작전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그 가운데 헐리우드의 공산당 찾기도 유명했다. 당시 엘리아 카잔은 청문회에서 30년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전례를 고백하고 헐리웃에서 일하는 친구와 동료들 중 공산당원들의 이름을 불었다. 그 이후로 그는 배신의 아이콘, 밀고자로 헐리우드에 낙인 찍혔다.
이 동영상은 1999년 로버트 드 니로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엘리아 카잔에게 평생 공로상을 시상하는 장면이다. 영상을 보면 보이는 사람으로만 찾자면 워렌 비티, 스티븐 스필버그, 로라 던, 캐시 베이츠, 커트 러셀, 메릴 스트립 등은 박수를 치며 일어서지만 짐 캐리, 홀리 헌터, 에드 해리스, 닉 놀테(그는 정말 강력하게 그를 부정했다.) 등은 묵묵히 앉아 박수도 치지 않고 있다.
매카시 광풍은 떳떳한 바람이었나? 절대 아니다. 그는 미치광이였고 극단적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그는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48세의 짧은 나이에 죽었다. 그렇다면 엘리아 카잔은 언제까지 살았느냐고? 무려 94살까지 사셨다. 1909년 현재는 터키 이스탄불이 되어버린 곳에서 태어난 이 그리스인은 외국인 추방이 있기전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와 정착했다. 매카시 광풍에서 자신의 소신과 대의를 위해 친구와 동료를 팔았던 그는 배신자와 밀고자로 낙인 찍혀 숱한 비난과 욕을 먹었다. 그러나 그는 1945년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를 만들기 시작한 그 이후부터 줄곧 끝내주는 영화만 만들었다. 그는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과 초원의 바다를 찍었고 다나 앤드류스와 부메랑을 만들었다. 그레고리 펙과 찍은 신사협정으론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고 리처드 위드마크와 찍은 거리의 혼란으로는 베니스에서 수상했으며, 말론 브란도와 찍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비바 자파타, 워터프론트로는 작품으로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고 아카데미를 석권했으며 말론 브란도라는 세기의 배우를 배출시키기도 했다. 그 뿐인가? 밀고자 사건이 있은 후로도 그는 에덴의 동쪽과 초원의 빛을 찍어 역사에 남을 영화를 남긴것은 물론 제임스 딘과 워렌 비티라는 청춘의 아이콘도 탄생시켰다.. 그 후로도 군중속의 얼굴, 아메리카 아메리카, 와일드 리버 등 명작을 남겼다.
엘리아 카잔의 업적은 분명 뛰어나다..멋진 영화를 너무 많이 만들었고 그의 영화에서 배출시킨 멋진 배우들도 너무 많다. 워렌 비티..제임스 딘..나탈리 우드..그리고 말론 브란도! 그러나 그의 배신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아카데미의 저런 식의 처사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범죄행위인 배신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졌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프리츠 랑을 비롯해 에른스트 루비치, 빌리 와일더 등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듯이 조셉 로지와 채플린도 매카시 광풍을 맞아 떠나야 했으며 그들의 업적은 빨갛게 물들었으며 그 다음에 있을 영화들은 상처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로지의 말년의 영화들을 보라.)
자, 그럼 여기 1972년의 영상을 보자. 그는 단지 고마워하고있을 뿐이다..이곳에 초대해준 여러분께 감사하고, 또 고마워할뿐...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누구냐고? 찰리 채플린이다. 나의 신이자 또 다른 아버지, 찰리 채플린..옆에서 모자와 지팡이를 주는 이는 나의 또 다른 무한엔돌핀 잭 레먼이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를 찍은 이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인은 없으며 그의 영화를 보고 웃거나 울거나 하지 않은 대중은 없다. 그는 영화의 이름이자 역사다..그런 그나 매카시즘이 불어닥친 50년대에 결국은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 라임라이트, 킹인뉴욕 등을 찍고 사라졌다..ㅜㅜㅜㅜㅜㅜㅜ매카시 나쁜시끼ㅜㅜㅜㅜㅜㅜ....아카데미는 그에게 평생 공로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 되었다.
엘리아 카잔의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하되,,나는 그의 배신 행위를 용서하기가 어렵다..아트시네마에서 곧 엘리아카잔 특별전이 열린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군중속의 얼굴 정도는 보고싶었는데 그 영화는 하지 않는다. 워터프론트로 자신의 할 말을 대신 한 엘리아 카잔, 그가 나쁜점은 배신을 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씁쓸한 일이다. 그가 고발해 나라를 떠나거나 일을 접어야했던 많은 동료들은 일찍이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누가 사살했으면 좋겠다는 증오를 받았음에도 2003년까지 살았다. 역시 욕은 먹을수록 오래 사나보다. 우리 나랏님은 100세까지 사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