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후렌지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고등학교 1학년때 종이를 나눠준적이 있었다. 17살. 내 나이 만 15살이었다. 나는 다른것엔 고집이라곤 전혀 없는데 내 장래희망만큼은 항상 완고했다. 엄마 아빠 몰래 나는 예체능과를 적어냈고 아버지는 당연히 내가 문과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졸업때도 나는 고등학교 가는걸 거부했지만 아빠가 날 죽이려고 들어서 엄마가 설득 끝에 학교를 겨우 갔다. 아빠한테 맞아죽을 각오하고 입 꾹 다물고 있었다. 결국 내가 이겼다. 2년 동안 같은 친구들과 학교도 잘 빼먹고 그림도 제대로 안그리고 날씨 좋으면 물장난에 햇볕에 누워 옷 말리고 아이스크림 먹고 그렇게 지냈다. 미술하고 음악하는 친구들이라 자존심도 강하고 자의식도 세다. 꾸미기 좋아하고 감성적이고 예민하고 다들 예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꿈이 크고 야망에 불타는 친구들도 많았다. 다들 저마다의 꿈이 있었겠지? 지금 왜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다닐때는 세상에 불만이라고는 학교에 있는 그지발싸개같은 진로상담 선생님 뿐이었다. 모든게 우리들 중심이었고 매일 매일이 재미있는 날들이었다. 아- 이대로 쭉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대부분의 친구들이 혜주같은 아이들이었다. 물론 영화속 혜주는 인천에서 제일 좋은 여상을 나왔지만 우리 학교 여자애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제일 좋은 여대를 갈망했다. 그리고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에 좋은 조건의 남자와 만나고 비싼 차, 맛있는 음식, 그리고 성대한 결혼. 대부분의 여자들이 원하는 그런것. 혜주는 예쁘다. 꿈도 크고 야망도 크다. 하지만 고졸인 그녀에게 증권사에서의 일은 승진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대게 잡일과 심부름따위,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취급 당하는 그녀..친구들 사이에서 콧대가 높고 공주병에 이기적인 그녀는 밉상이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혜주는 찬영의 어깨에 기대 한숨을 쉰다. 하 인생이란게 그리 만만한게 아니지..



제일 마음아팠던 인물 지영이, 학교에서 이런 애들은 못 봤지만 우리 동네에는 이런 애들이 많았다. 빈층 동네라 그런지 가난하고 부모도 없는 애들이 많았고 학교로 진학하는길 보다 일찍이 돈벌러 나가는 애들이 많았다. 지영인 재능이 있다. 그런데 돈이 없다.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곤두서있는 지영이, 너무 측은해보여서 안아주고싶었다..아..세상이 너무 힘들지..나는 잘하고싶고 하고싶은게 많은데 잘 도와주질 않지? 집이 무너져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소년원에 가게된 지영이가 나가도 갈곳이 없다고 했을때..왜그렇게 눈물이 찔찔 나던지...세상에 버려져 혼자가 된 그녀를 안아줄 사람이 없을까?



나랑 가장 많이 닮았던 태희. 그래서 보는 내내 너무 가슴 아팠다. 나도 10대 소녀일땐 세상에 부러울게 없었지. 내 자신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너무 좋은 친구들, 그리고 내 꿈. 태희는 몽상가다. 세상을 돌아다니고싶고 봉사활동도 하고 자신을 버릴줄 아는 친구. 게다가 정이 많고 오지랖이 넓어 누군가에게 꾸준히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하는 태희. 나하고 너무 닮았다..아빠의 인격 모독에 대해 지적할때는 정말 소름돋았다. 나도 아빠한테 그런적 있거든, 태희야 나도 꽃 한송이와 시원한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다른건 다 필요없어..



어딘가로 떠난 태희와 지영이, 그리고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을 혜주. 쌍둥이 자매- 아 참 가슴이 아프다.
우리도 다들 어릴땐 꿈을 향해 달렸는데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벌써 스물넷이다. 우리 314 친구들, 어제 오후에 마침 홍애한테 문자가 왔다. 잘 지내고 있니, 회사가 힘들다고 그만둔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들, 모두 열심히 산다. 꾸준히 공부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윤시, 좀 게으르고 부모님한테 많이 의지했지만 이제 스스로 해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앎, 일이면 일 공부면 공부 쉬지 않고 달리는 기특한 홍애, 예민하고 꿈이 큰 예술가 센, 미국으로 가버린 이다, 매일 노는것도 일하는것도 열심히 사는 은지, 마음이 잘 통하고 취향도 잘 맞았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친구 매니아, 그리고 매일 버둥거리기만 하는 고집쟁이 나. 아 눈물난다..뭐가 이렇게 힘든지 어릴땐 잘 몰랐지. 앞으로도 까마득한데 벌써 지치면 안돼지..세상이 참 내 맘대로 안된다. 열심히 살고 있는것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 않은가보다. 생각하느라 바쁜 태희, 내가 엄마한테 맨날 나 생각하니까 말시키지좀마! 라고 하잖아. 태희야 있잖아 나도 많이 힘들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결국 모든게 다 내 몫이야. 결정도 후회도 다 내 몫이지. 더 열심히 살아야지, 더 더욱 더 많이.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