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시네마 오디세이 파트원 때는 내가 워낙 줄창 말하고 또 말하던 영화들이라 또 쓰면 지겨울거 같아서 스킵했는데 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보다가 오디세이 파트투에 생소한 작품들이 많아 쓰고자 한다. 이 100편의 영화 오디세이에 각각 주제가 있는데 첫번째가 유토피아, 두 번째가 친밀한 삶이다. 벌써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삶에 관해 다룬 영화들인데..그 면면이 아주 흥미롭다.



내가 자크 베케르의 영화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건 누벨바그나 자크 따띠의 영화들에 흥미를 갖고 프랑스 영화를 본 지 한참 지나 구멍이란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 뒤로 장 가뱅이 출연한 내 현금에 손대지 마라를 같은 시기에 보게 되었고 이 황금 투구란 영화는 머지않아 dvd를 통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시대를 풍미하는 스타와 배우들이 항상 감독들과 공존하는데 이 시대에 장 가뱅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몬느 시뇨레였다. 그 총명하고 명민한 눈동자와 도톰하고 아름다운 입술에서 내뱉는 대사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어로 들리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황금 투구는 당시에 외면까진 아니었으나 그 작품이 가진 것에 비해 큰 평가를 못 받았던 작품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세계적으로 연일 틀어대는 단골 프랑스 명작 중의 하나가 되었다. 흔히 자크 베케르의 영화들을 들며 친숙한 감독이라는 표현을 빌린다. 장 르느와르의 세계가 깊고 무한하다면 베케르의 영화들은 그 친밀도아 르느와르에 비해 가깝다. 주제나 소재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누구나 공감가능하며 입장을 동일시할 수 있는 소박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우연한 사건이나 오해들로 인해 복잡한 사건이 되는 플롯을 가진 영화들도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건의 줄거리와도 맞닿아있어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큰 무리가 없는 것도 그의 큰 장점 중 하나다. 황금투구도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꼬여버린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이야기를 조립하고 풀어내는 솜씨가 가히 마스터즈라 칭송할만한데 그 정교함을 보면 이야기는 이런식으로 풀어야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구나..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바로 느꼈다. 더불어 시몬느 시뇨레의 그 명민한 아름다움이란..이것이 컬러가 아님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나라, 수많은 언어로 읽혀지고 있는 기 드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을 영화화한 작품. 사실 국내에도 상영 기회가 많이 없고 dvd도 발매되어있지 않아 생소한 관객들이 많겠지만, 아마도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까..한다. 사실 이 양반의 영화보다는 이력이나 가치관이 좀 더 많이 알려져있는데 약간 소개하자면 영화 만드는 일을 하기 전부터 소설도 쓰고 문학과 영화평론을 하던 소설가 내지는 학자스타일에 가까웠던 사람이다. 그랬던 알렉상드르 아스트뤽은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영화언어에 눈을 돌렸고 만년필론이라는 재미난 이론을 냈고 그것을 실제로 자신의 영화에 실험하여 칸에서 수상까지 받은 기인이었다. 사실 누벨바그라하면 장 뤽 고다르나 프랑소와 트뤼포, 끌로드 샤브롤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 태동기에 알렉상드르가 이바지한 점이 많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트뤼포나 샤브롤이 새로운 영화시대의 언어로 젊은이들을 영화관으로 모여들게 했으며 당시 미국 영화에서 인기가 많았던 상처입어 거칠은 자유영혼 스타일의 주인공과는 다른 의미의 성적 자유분방함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종(?)스러운 여주인공들과 바람둥이 혹은 범죄자 스타일의 남자캐릭터들이 인기가 많았는데 누벨바그 스타일로의 이정표를 제시한 이 태동기의 영화들에 알렉상드르는 많은 공헌을 했다. 일종의 이전 영화들과는 색다른 방법들을 제시한 것이다. 트뤼포가 불을 붙였고 고다르와 트뤼포가 그 부흥기를 함께 이끌었지만 그 시초에는 알렉상드르의 이름도 빼놓아선 섭섭할듯..영화의 줄거리는 소설과 궤를 같이 하기에 별다르게 말 할 필요가 없겠지만 주연배우 마리아 셸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질 염려가 있으니 주의할 것..



이역시 서울에서 지겹도록 많이 상영한 마스무라 야스조의 아내는 고백한다. 일본 황금기 시절의 영화들을 거진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오즈 야스지로와 나루세 미키오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님 제외하고) 더 사랑에 빠진 감독님들이 마스무라 야스조와 이치가와 곤이다. 오즈 야스지로의 착하고 인간냄새나는 캐릭터들이나 나루세 미키오의 비련의 여주인공보다 나를 더 매혹시킨 것은 마스쿠랴 야스조와 이치가와 곤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비정하고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저분한 인간상들이었다. 세심하게 세공한 감독들의 열정 탓도 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와카오 아야코를 말할 땐 항상 이 영화를 빼놓을 수가 없다. 보름달같이 동그란 얼굴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영화이력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서 10대의 성전이란 하이틴 스타일의 영화가 대박을 쳐 인지도는 물론 인기도는 하늘을 찔렀지만 언론은 그녀의 연기에 혹평을 매겼었다..하지만 미조구치 겐지와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에 차례로 출연하며 안정감있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 정점을 찍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아내는 고백한다이다. 물론 많은 고전 명작들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마스무라 야스조, 미조구치 겐지, 이치가와 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 일본영화 황금기 시대의 영화들은 지금에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플롯이 탄탄하고 그 대사와 여백의 미 또한 아름다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되는 것이 일품이다. 이 작품 또한 사랑에 빠져 광기에 사로잡힌 여인을 연기하는 와카오 아야코의 매력에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드는 본인을 발견할 수 있을 것.




우선 이 영화를 말하기에 앞서 1950-6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영화의 황금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의견에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일본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필두로 세계적으로 재팬시네마의 황금기를 알렸고 미국은 큐브릭, 히치콕을 중점으로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서막이 일고 있었으며 프랑스에서는 고리타분한 전 세대와 이별을 고하는 누벨바그 움직임이 일었으며 영국에서는 린지 앤더슨이나 토니 리차드슨 등을 중심으로 프리 시네마 운동이 일고있었다. 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시대였느냐 말인가...물론 영화적으로. 그 영국 영화에 새로운 이방인이 흘러들었는데 그 이름 조셉 로지라 하겠다. 조셉 로지와 같이 로만 폴란스키나 안토니오니 등이 영국에서 이 시기에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60년대 매카시 광풍을 피해 조셉 로지는 영국에 자리를 잡고 해롤드 핀터와 하인이란 영화를 만들기로 하는데 이 영화에 가장 큰 일조를 한 것은 배우 더크 보가드였다. 영국영화계의 황태자였던 그는 위엄과 우아함을 자랑하는 배우였다. 지금 내 방 벽에 사진이 붙여져있기도 하지만 나는 조셉 로지와 더크 보가드, 그리고 하인을 변태처럼 사랑하고 집착한다. 죽기전에 보고싶은 영화 다섯편에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질척질척하면서도 우아하고 끔찍하고 변태스럽다. 조셉 로지는 자신의 남은 영화 인생을 이방인으로 정치적, 이념적 대립. 계층간의 대립 등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영화에 담았다. 그의 영화에는 항상 끝을 메우지 못하는 끈적한 시선들이 남아있고 약간의 상처들이 부정적인 결말을 통해 엿보인다. 조셉 로지와 더크 보가드의 모든 영화들을 사랑하지만 이 '하인'만큼은 누구에게도 뺏기고싶지 않은 나만의 걸작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클 정도로 아끼는 영화다. 부디 1세기가 지나도 사랑받을 수 있도록..




고다르가 사랑한 남자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사실 드레이어에 대해선 널리 알려진만큼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그의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잔다르크의 열정이었고 그것두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를 본 뒤였다. 내 영화역사에 어느 부분에 그를 올려두어야할지 아직도 헤매지만..그가 카메라로 배우와 공간을 다루는법에 나는 큰 인상을 받았다. 잉마르 베르히만과 로베르 브레송의 카메라들만이 배우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는데 드레이어의 클로즈업은 가히 예수의 가시나무관과도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신성모독인가요?) 만드는 영화마다 스타일을 달리했지만 캐릭터에 일관성이 있어 영화를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은 없다. 사실 잔다르크의 열정이나 오데트보다 게르트루드가 훨씬 오락적으론 재미있는 영화란 생각을 갖고있다. 근데 아주 중요한것은 이 영화는 dvd나 티비로 보면 안 된다는 것 영화의 색깔과 소품이 배우들의 옷이나 대사들과 유기성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 하나의 장면들은 작은 화면이 아닌 거대한 극장 스크린으로 확인해야한다는 것을 꼭 말하고싶다. 잔다르크의 열정도 물론 영화관에서 봐야하지만 이 영화 또한 무조건 스크린으로 보는게 훨씬 큰 이득이다. 작은 화면을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영화가 되므로,,만약에 공간이나 소품 그리고 색들이 배우와 함께 연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영화학도들은 이 영화를 꼭 눈여겨 봐야한다. 화려함이 없는 간소한 리얼리스트의 공간들을 꼼꼼하게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체크하면 아마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드레이어의 유작이다.




다양한 아티스트로 활동했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대표작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 아르메니아에 가면 파라자노프 박물관이 있다는데 엄청 가보고싶다. 일본여행이 끝나면 유럽으로 오타쿠들 끌고 영덕투어 하고싶은데..거기에 아르메니아 파라자노프 박물관도 추가해야겠다. 다른 많은 영화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파라자노프도 영화때문에 많은 핍박을 받고 구속에 수감까지 겪어야했던 비운의 감독이다. 70년대 쏟아진 수많은 보물같은 소비에트 라인의 영화중 하나로 러시아 영화를 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마도 삐에르 빠졸로 빠졸리니 감독이 겪어여했던것과 마찬가지로 자유분방하고 전위주의적인 색채가 짙은 영화로 인해 다양한 죄목을 들어 (이를테면 동성애, 자살의 유혹 등...;;) 그를 옥죄어왔다. 이 전위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는 소련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그 영화언어가 너무나 자유롭고 비영화적이며 그 한계가 없어 또 다른 영화 마술사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파라자노프는 마지막 영화를 만들때까지 당국에서 계속 되는 압박으로 금전적으로도 힘들었으며 육체적으로도 힘든 나날을 보내다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운의 작가이지만 그가 남긴 영화들은 주류의 영화언어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영화문법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많으며 소비에트 영화 어디에도 역사를 같이하는 스타일이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재기넘친다. 특히나 이 영화 이후 석류의 빛깔이나 수람요새의 전설의 이미지들은 수많은 유럽감독들에게 영화적 영감을 주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이미지는 유일무이한 그의 인장이었으며 앞으로도 그와 비슷한 작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감독이라면 빠졸리니 정도일까..



시네마테크서울에서 무셰트를 보고나서...아..다르덴의 부모가 이 사람이었구나하고 탄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국내의 많은 영화청년들이 그 교과서처럼 여기고 따라하는 다르덴에게도 영향을 준 감독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의 한숨이었으리라. 당시 많은 독립영화에는 다르덴의 로제타와 차일드와 비슷한 영화문법과 소재들이 많았었다. 무셰트를 본 이후로 로베르 브레송의 첫 영화부터 마지막 영화 돈까지 본 나는 베르히만의 영화를 본 것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였고 마침내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브레송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없다. 죄악의 천사들의 블로뉴숲의 여인들,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등에서 두드러지지 않았던 것들이 발타자르와 무셰트를 정점으로 브레송의 후반기 영화에는 죄악과 구원받지 못하는 영혼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영화공부에 빠져 사람만나기도 꺼려하던 시절에 나는 영화가 어떤 체험을 통해 구원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보게 되었던 영화들이 브레송의 영화들이고 그의 영화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체험하면서 나는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고다르의 두 번째 부인인 안나 비아젬스키가 여주인공을 맡아 열연한 이 영화는 평화로운 일상 너머 추악한 인간의 모습과 가혹한 인생을 당나귀를 통해 늘어놓는다. 인생은 어렵고 힘든것일까? 보고나면 그 기운에 슬픔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다. 브레송은 그것을 가능케했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밖에 감히 내가 할 이야기가 없다.




해롤드 핀터가 조셉 로지와 함께한 3부작중의 하나인 사랑의 상처. 내가 접할땐 액시던트란 제목으로 봤었는데 이렇게 우스꽝스런 제목으로 오역되어있다니...영화 전체에 흐르는 지적이고 단아한 분위기는 옥스포드가 무대라는 것이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더크 보가드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관객의 주관적 참여를 유도하는 브레히트적인 영화언어를 구사한 해롤드 핀터의 대단히 방대한 구성의 시나리오와 조셉 로지의 고집스런 연출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나의 사고를 기점으로 과거 회상을 오가는 이야기는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정도의 복잡한 구성. 게다가 그 저면의 정치적 계급의식까지..이건 천재라고 하기도 어렵고 꼼꼼한 맑시스트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대단한 남자....고다르 등 많은 감독들이 브레히트를 인용했지만 그의 스승이자 공동작업했던 브레히트를 가장 적절히 이용한 감독중의 하나가 조셉 로지가 아닌가한다.




아방가르드라는게 배운다고 익혀지는건 아니지만, 아방가르드한 비주얼리스트가 되고싶은 감독지망생들은 석류의 빛깔이란 영화를 꼭 보기를 권한다. 난 이 영화를 보고나서 빠졸리니의 천일야화를 떠올렸다. 세상에 빠졸리니같은 감독이 또 있을까? 했는데 저 멀리 러시아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아르메니아 피를 가진 청년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있었다. 내가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유학파보다 토종파들의 영화가 좋은 이유는 영화에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이나 주변인물, 역사와 전통이 함께 담기기때문이다. 파라자노프의 영화는 어느 영화역사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사람은 자신이 나고 자란 주변 환경을 영화에 담았고 그루지아 전통 의상이나 미술,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만들었기에 이런 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전세계에 이 사람 하나뿐인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대체불가능한것을 꿈꿔왔다. 트랜스포머나 미션 임파서블을 만드는 사람은 그 누구든 될 수 있지만 석류의 빛깔을 만들어낼 사람은 지구상에서 이 남자 하나뿐인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러시아는 그의 영화를 가지고 퇴폐적이고 정치적 상징이 넘쳐난단 이유로 그를 탄압했다. 러시아 영화들은 고리타분한 사실주의로 그 자신들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고 언어를 개발하고 수많은 영화 기술을 만들어낸 나라인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장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비에트 영화들을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유수의 감독들이 되살려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고 독창적인 언어로 러시아에 대립했고 자신의 뿌리인 그루지아의 언어로 민족적인 자유 의지를 영화안에 새겼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는 죽는날까지 괴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파우스트, 신곡 등 대단한 작품들이 그의 손에서 새로 재탄생 되길 기다렸고 몇 십편의 시나리오와 천 여개에 육박하는 미술품들이 세상 빛을 보기를 기다렸지만 그의 죽음은 너무나도 일렀다..석류의 빛깔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새로운 언어이다. 고다르나 히치콕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언어를 가졌다. 보지 않는 것은 인생에 너무 가혹한 일..



누보로망의 대표 기수 알랭 로브그리예의 대표작 거짓말 하는 남자,. 에릭 로메르 등 당시 프랑스 작가들과 많은 작업을 했던 스타 장 루이 트래티낭이 주연인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이다. 뒤라스와 레네 등과 함께 당시에 누보로망 영화들을 기획하고 만들던 작가로 '정체불명'의 영화들을 주로 만들었다.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에 걸맞을법한 이 영화들에는 체계화된 언어가 없는 편이며 주로 영화에서 쓰이던 구성이나 서사가 뒤틀리거나 없는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 또한 갑작스런 사건을 기점으로 점점 모호해지고 불투명해지는 스토리가 끝을 알 수 없는 만화경을 들여다보듯 환상적이다.


자크 리베트는 까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로메르, 트뤼포, 고다르 등과 만나 비펴 영화이야기를 나누고 비평을 통해 혹스와 히치콕의 위대함을 세상에 알린 중요한 필진 중의 하나가 된다. 누벨바그 단원들 중에도 그 예술적 취향이 고고하고 하이클래스라 그가 만든 영화들도 대중적이기 보다 자신의 취향과 예술적 잣대를 실험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이지만 이번에 상영하는 영화 미치광이같은 사랑은 리베트의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영화로, 즉흥적인 연출의 실험이 성공을 이룬 영화같단 생각이 든다. 아웃 원이나 누드 모델, 잔 다르크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는 평범한 영화 만들기엔 그닥 흥미를 두지 않았다. 250여분간의 긴 상영시간 내내 즉흥적인 연출과 완결되지 않은 시나리오 영상 연출에 중점을 둔 미치광이같은 사랑을 그 자체가 실험이고 고문이지만 또한 색다른 영화언어에로 초대이기도 한 셈




트로마같은 엽기 유단자들은 아니지만 몬테 헬만 또한 b급 영화계에선 알아주는 능력자로 잭 니콜슨 등과 어깨를 나란히한 대장부다. 국내에서 트로마보다 인기있어지길 바라며.....이번에 상영되는 자유의 이차선은 이지라이더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는데 자유를 갈망하는 히피들이 대마초와 스피드에 쩔어있던 이지라이더에 비해 자유의 이차선은 그보다 더 철저한 저예산 b급 티를 내는 작품이다. 당시 잭 니콜슨과 함께한 영화 두 편으로 인기 b급 감독이었던 몬테 헬만은 당시 빌보드 상위권에 솔로음반을 올려놓은 제임스 테일러와 비치보이스의 초창기멤버였던 윌슨 형제의 데니스를 두 스피드광으로, 롱아일랜드 출신의 모델로 아트 가펑클의 연인이었던 로리 버드를 홍일점으로 캐스팅했다. 그리고 여기에 b급배우의 제왕 워렌 오츠가 함께 했다. 락스피릿 충만한 캐스팅이지만 내용은 어쩐지 우울하다. 자유를 내포한 스피드를 갈망한 청춘히피들과 쓸쓸한 워렌 오츠의 모습이 어쩐지 나를 울먹거리게 만든다. 지금 세상의 젊은이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영화가 아닐까한다. 앞에 놓인 일은 어렵고 힘든 일들 뿐이고 내 인생에서 갑자기 도망가고싶을때 보면 어떨가..몬테 헬만이 b급 영화를 만들었지만 청춘영화같은 것이 참..걸작이다.



모리스 피알라의 대학부터 붙어라..제목만 보면 청소년 훈육영화같은데,,그런건 아니고..지금 고3생들한테 보여주면 참으로 시기적절한 영화가 아닐까싶은데..이 영화는 필름포럼에서 모리스 피알라전 할 때 봤던 영화다. 당시 룰루, 사탄의 태양 아래, 반 고흐 모두 봤었는데..그 연륜과 완숙미의 경지에 이른 영화들에 경의를 표했었다. 영화언어는 감독 자신이 만드는 것인데 그 안에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포함되는 것이 보통이다. 모리스 피알라는 마흔 살이 넘는 늦은 나이에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의 영화에는 꼰대같음이 없다. 바닥이나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에도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21세기의 젊은이들은 취업과 진학 사이에서 매일 자살과 살자의 기로에 놓여있다. 부모의 압박과 주변 친구들과 사회의 시선에서 부자유스러운 뜻하지 않은 시선의 독재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어쩌면 가장 불행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영화 한 편이 그들에게 자유를 선물해주진 않겠지만 좀 더 관용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지않을까한다. 모리스 피알라 할아버지는 참..너무 일찍 가셨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보고싶은 찰스 버넷의 양 도살자. 서울에 있었으면 나도 보러갔을텐데..아직 스크린으로 본 적은 한번도 없다ㅠㅠ 원래 이 영활 UCLA졸업작으로 만들었는데 예산이 1만달러인데 음악 저작권료가 15만불이 넘는 우스운일이 벌어져 30년간 개봉관에 걸린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제한상영이 풀려 16밀리를 35밀리로 복원했다고 한다. 고마운분의 자막 작업으로 나도 영활 구해봤는데 스크린으로 너무나 보고싶다ㅠㅠㅠㅠ찰스 버넷이란 이름은 국내에서도 그닥 통용된 이름은 아닌데 더 블루스 시리즈에서 빔 벤더스, 마틴 스콜세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클 피기스, 리처드 피어스, 마크 레빈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한 인디감독이다. 존 카사베츠보단 다음 세대이자 존 세일즈와 그 시대를 함께한 독립영화의 기수로 흑인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이 79년이라고 가정하고..몇 년 전만 해도 흑인 배우가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아메리칸 뉴 시네마 이후, 인디언은 더이상 나쁜놈이 아니고 흑인은 더이상 천대받는 하인이나 운전기사 역할이 아니며 동양계=범죄자라는 공식이 점점 수정되고 사라지는 추세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화법을 통해 한 흑인 가정과 그 주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그 이전까지 그들의 삶에 진지한 카메라를 가져다 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미국역사에서 소외되어 왔으며 무시되거나 차별되어져왔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 영화가 비교적 다른 영화들에 비해 세공이 덜 되어있고 자연조명이나 연출이 거의 없이 있는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아 그 가까움이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마치 내 이웃의 이야기를 보고있는것 같은 기분. 비쥐엠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아프리카계 뮤지션들의 음악들은 영화를 감상하는데 더없는 도움이 된다.




안제이 바이다의 철의 사나이. 재와 다이아몬드, 대리석 인간과 함께 디비디 출시되었을때 만세의 노래를 불렀던 그 영화. 70-80년대 사회적 현실에 분개한 바이다가 영화에 담아낸 자유에로의 갈망은 그를 세계적인 거장에 올려놨다. 칼같이 매섭고 차가운 현실을 있는그대로 가감없이 담아낸 철의 사나이는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그는 세계 영화제가 찾는 단골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영화 이후에 폴란드에 내려진 계엄령을 피해 프랑스로 피했다. 시대를 담는 카메라 무엇인지 데뷔작부터 근작까지 한결같은 가치관을 보여주는 멋진 감독.




그루지아에 내려져오는 전통적인 전설을 토대로 만든 수람 요새의 전설. 사실 이 영화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데 그 이야기들이 영화를 관람하는데 그릇된 상상을 가져올까봐 아무 이야기도 쓰지 않겠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영화들은 그냥 봐야되는게 맞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많이 말했어...ㅠㅠ..




테렌스 데이비스의 먼 목소리 조용한 삶. 제목을 듣고 긴가민가했다. 스틸을 보니 내가 본 그 영화가 맞다. 만든 영화들이 모두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기억과 현재. 음침하기까지 해 보이는 무채색 위주의 영상에 노래하는 사람들,,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지금의 사람들. 사실 걸작 반열에 오를 정도로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나를 끌고 가는 묘한 힘이 있었다. 서로 조용히 읊조리는 음악들도 약간의 소름이 돋을 정도. 노동자 출신으로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이 독립영화 감독은 21세기에 와서야 환희의 집이란 영화로 그나마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정도다. 하지만 이 감독 영화엔 묘한 힘이 있다. 중독성 내지는 충동성을 가진 영화들의 저력에는 감독의 꼼꼼한 리얼리티가 베어있기때문이 아닐까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영화에 자기반영적 메세지를 넣는 감독의 훌륭한 자세에 박수를. 짝짝짝




아주아주 좋아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 이 영화 아주 유명한 영화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싶은데..재밌게도 내가 이 영화를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를 보고 보았다. 이 영화 아주 재미있다. 누구나 상상해봤음직한 사소한 거짓말을 통해 사람들의 재미난 행동과 이야기들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 거짓말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누구를 헤치거나 음해하거나 하는 일이 아닌 재미난 사건의 일부일 뿐이다. 키아로스타미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듯해서 좋다.



더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참으로 눈물이 나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 영화계의 랭보라 불리는건 첨 알았지만,,그 아름다운 이름만큼이나 시적인 영화를 만드는 필립 가렐의 영화다. 지금 가장 핫한 프랑스 남배우 루이스 가렐의 아버지이기도 하고,,최근에도 루이스 가렐과 모니카 벨루치를 주연으로 여름 영화를 만들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활발한 작품활동 중이시다. 하지만 그의 영화적 발전기이자 전성기는 70-80년대라고 생각한다. 공격적이고 진취적이며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던 그 때의 영화들은 아마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니코와 만들어낸 전위적인 작품들도 모두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더이상 기타 소리를 들을 수 없어는 그런 니코를 잃고 만든 자전적 경험을 녹아내어 만든 영화로 상실에 이은 기억과 감정의 흐름등을 담아낸 작품이다. 국내에서 상영되었던적이 없는 걸로 알고있는데 스스로의 고고한 예술적 취향에 힘입어 영화도 꽤 읽기가 어려운 편이다. 반가운 얼굴 미레이유 뻬리에의 주름진 얼굴을 볼 수 있고 롱테이크의 고집스러움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양 도살자와 게르트루드, 파라자노프의 작품들을 춫천

무조건 스크린으로 봐야되는 영화들이라 그럼





이안 맥켈런경은 1939년 잉글랜드의 번리에서 태어났답니다. 지금은 간달프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이님은...천재임. 모든 연기를 내 몸처럼. 나처럼. 내가 그넘이 된 것처럼..특히 무시무시한 배역에서 그 진가가 타오르는...리처드 3세 쩝..! 갓 앤 몬스터도..저 사진은 1969년 터치 오브 러브에 나왔을 당시. 엄청 청초하심..



차례대로 사계절의 상인, 와일드 앤 윌링(left), 릴링턴가의 살인에서.
흐어...존 허트.ㅠ존 허트니무는 1940년 잉글랜드 더비셔 지방에서 태어나셨습니당. 정말 많은 영국 영화에 출연했고 tv 작품도 많이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인지도야...끽해봐야 엘리펀트 맨...아니라면 에일리언과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나온 악역 정도가 전부일까?ㅠㅠ 최근에 잉글리시맨 인 뉴욕에 나온 것을 보고..아..허트님.....감상에 젖어보았당. 젊었을때도 느므 멋지당. 물론...피터 오툴이나 헨리 폰다의 젊었을적에 비하며 그 포스가 많이 떨어지지만,. 그도 이안 맥켈런경 못지 않은 영국의 국민 배우이자 인기있는 배우임. 70 평생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으니...죽기 전까지도 연기하실 것 같은..멋진 배우. 오래오래 사세요~!



차례대로 halls of anger, 마지막 영화관, 팻 시티에서
제프 브리지스,,,,,,,,,,,,,,..최근에 크레이지 하트를 보고 다시 한 번 반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제프 브리짓..사실상 마지막 영화관이랑 팻 시티에서 이 청년이 자기 얼굴을 각인시켰듬. 그후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90년대에 좋은 영화를 많이 찍은 것도 사실. 우리나라 배우들은 나이 들면 누구 아빠, 누구 할아버지, 아니면 망가지는 캐릭터가 많은 반면에..미국이나 영국 영화에서 노년 배우는 그래도 많이 대접받는다. 시장이 워낙 넓어서겠지만..확실히 제프 브리지스에겐 다른 또래 배우들에게 있었을법한 제법 강렬한 순간이 많이 없었던 배우이기도 하지만..그 특유의 눈매..그 두루뭉실한 눈매에 브리지스의 그 개성담긴 목소리 또한..전매특허다. 난 이 남자 연기하는게 좋다. 그래서 이제 육십밖에 안되셨으니 인생은 지금부터라구..더 좋은 영화 많이 찍으시길..



위에부터 크라이 베이비 킬러, 파이브 이지 피시스, 이지 라이더
잭 니콜슨은 1937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이 남자 만큼이나 존재감이 리얼한 인간이 있을까? 찍어놓은 필름으로 영화를 바라보는데도 지금 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희안한 남자. 60년대에 찍은 영화들은 거의 b급 영화들이지만 70년대엔 줄기차게 좋은 감독들을 많이도 잘~만났다. 밥 라펠슨, 마이크 니콜스, 할 애쉬비, 로만 폴란스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켄 러셀, 밀로스 포먼, 아서 펜, 엘리아 카잔, 스탠리 큐브릭, 토니 리차드슨, 제임스 L.브룩스....믿겨지는가? 70년대 미국의 뉴아메리칸 시네마를 선도했던 모든 작가주의, 인디펜던트 감독들이 그와 함께 한 번 혹은 세 번까지도 작업을 했다는거다. 그만큼 잭 니콜슨은 미친놈이었다. 그 열기를 주체할 수 없어 직접 영화를 만들기도 했고..90년대까지 왕성하게 영화를 찍었구..21세기 들어 작업량이 많이 딸리지만 디파티드나 버킷 리스트를 찍은걸 보면 아직도 좋은 감독들이 그를 원하고있는게 분명함. 최근엔 제임스 L.브룩스의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아무쪼록 오래살았음 좋겠다. 기왕이면 플레지에 스펙터클을 더한 영화같은거 함 더 찍어줬으면 좋겠고..



더크 보가드경..진짜 요새 애들말로 쩐다....그는 192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유럽 영화의 왕자로 군림했던 사람이다. 존재 자체가 우아했고 고고했던 사람이다. 살아있을때 그가 찍었던 영화들 중 대부분은 다 레전드다. 특히나 나는 조셉 로지 영화에서 그의 모습이 넘 좋다..루키노 비스콘티 영화에서도 좋고...넘 우아하다...걍 존재 자체를 가지고싶을 정도니깐..그를 볼때면 같은 나라, 같은 시대에 사았으면 너무 좋았을텐데..항상 아쉽다..흑흑ㅠㅠ 중년, 노년의 모습도 멋지지만..젊었을때도 정말..ㅜㅜㅜㅜ아...이 생명체는 대체 어디에서 온 생명체란 말이냐....지금은 별이 되었지만..영화는 계속 볼 수 있으니 넘 좋다..



위부터 줄루, 알피, 입크리스 파일
마이클 케인경은 1933년 잉글랜드 런던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수많은 히트작, 걸작을 남긴 영국의 국민배우다. 최근에 배트맨의 알프레로 다시 인기를? 허헛..50년에 데뷔해서 지금 60년간의 연기생활을 하며 15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긴 다작 케인. 그 중에 좋은 작품들? 너무 많다. 50년대에 찍은 영화들은 거의 작품이라 칠만한게 없지만..60년대에 찍은 사이 엔드필드의 줄루로 내가 마이클 케인이다를 세상에 알렸다. 그 뒤로 연달아 찍은 햄릿, 입크리스 파일, 알피로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60~70년대에 찍은 영화들 중엔 졸작도 많은 편이지만..휴스턴의 왕이 되려고 한 사나이나, 머나먼 다리 등을 찍으면서 후부턴 좋은 영화 위주로 많이 찍었다..마이클 케인은 대중적이고 친근한 스타 배우다. 최근에 칠드런 오브 맨이나, 다크 나이트에서 늙은 모습을 보니..젊었을적이 자꾸 생각난다..정말 멋졌는데..물론 지금도 멋지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은 1930년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셨다. 그는 이 시대의 지성이자, 인성까지 존경할만한 몇 안되는 감독들 중의 한 분이시다. 그는 50년대에 많은 작품에 단역,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단숨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누구다를 알린 작품은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한 세 편의 작품에서였다. 1964년 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석양의 무벚자 For a Few Dollars More, 석양에 돌아오다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까지,,그리고 로하이드의 성공으로 단숨에 스타가 된 사나이. 돈 시겔 영화에서도 거의 비슷한 캐릭터로 나오긴 했지만 더티 해리는 거의 그의 마초적인 이미지에 쐐기를 박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런데 재밌는점은 이 남자가 자기가 성공한 캐릭터인 마초맨과 웨스턴을 자신의 데뷔작에선 전혀 써먹지 않았단 점이다. 플레이 미스티 포 미로 성공적인 연출 데뷔를 치르고..그 후에도 좋은 영활 많이 찍었지만 (버디나 페일 라이더 등등)그가 전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추악한 사냥꾼을 찍고부터인 것 같다. 확실히 그 작품 다음으로 무게나 깊이감부터 달라졌으니까..암튼..지금 이순간 제일 오래살았음 하는 사람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아버지다. 히어애프터 다음으로 후버 국장의 이야길 찍는다는데..왠지...대박일 것 같은 예감이다..자기 전문아닌가?!!!! 게다가 주인공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거론되고 있다니...군침돈다..보고싶다..ㅜㅜ 오래오래 건강하세염..




더스틴 호프만은 1937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몇 편의 시시한 tv물에 출연하다가 67년 마이크 니콜스의 졸업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벼락스타가 되었다. 본디 브룩스의 프로듀서스에 출연할 예정이었지만 급하게 본 졸업 오디션에서 덜컥 붙고 만 것이다. 솔직히 벤자민역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절에 더스틴 호프만밖에 없는 것 같다. 그뒤로 찍은 영화들 미드나잇 카우보이, 작은 거인, 지푸라기 개, 알프레도 알프레도, 빠삐용, 레니,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마라톤 맨,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투씨, 세일즈맨의 죽음, 레인맨까지..70년대에서 80년대로 물흐르듯이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는 좋은 영화들이 많다. 지금 늙은 모습을 보면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졸업에 그 남자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좀 아쉽기도 하고..




로버트 레드포드는 193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났다. 선댄스 키드로 기억되는..엄청난 훈남에 미남..ㅠㅠ 지금은 작품활동을 하고있지 않고 전성기때도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았으나..불후의 명작을 몇 작품 남기긴 했다. 69년 내일을 향해 쏴라를 찍을 당시에 폴 뉴먼은 이미 대형 스타였지만 레드포드는 거의 초짜에 불과했다. tv 시리즈에 단역으로 오래 출연했었고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게 전부였으니까..이 영화를 찍고 그는 스타가 되었다. 그것도 초미남 스타..! 엄청난 영화에서 엄청난 호연을 펼치진 않았지만 로버트 레드포드만의 느낌있는 영화를 남긴 스타..이 남자는 영화보다도, 환경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고..자신의 스타탄생에 일조한 선댄스 키드란 이름을 빌어 인디 영화팬들의 무한지지를 받는 선댄스 영화제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희안하게 이 남자를 떠올릴때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1929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연극 무대와 라디오에서 배우로 일찍이 활동을 시작했구,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로얄 국립극단, 셰익스피어 국립극단의 주요 멤버로 연기에 관해선 도사라고 할 수 있겠다. 일찍이 배우로서 기본기부터 튼튼하게 다진 그는 53년 tv 시리즈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20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아마도 그가 가장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은 로버트 와이즈의 사운드 오브 뮤직일거다. 줄리 앤드류스와 함께 아름다운 영화를 남겼는데..지금도 왕성한 활동중이다. 최근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서 뵜는데 아직도 멋있다. 그 차가워보이는 인상은 여전하다..^^




지금도 너무 멋진 말콤 맥도웰님은 1943년 잉글랜드 요크셔 지방에서 태어났다. 린제이 앤더슨의 영화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이 똘끼연기는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만약에..라는 영화에서의 역할도 멋졌지만..도무지 죽을때까지 시계태엽 오렌지와 칼리큘라에서의 모습은 잊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 남자도 200편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을 정도로 다작했는데 개중에선 특이한 영화도 많다. 보통은 정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는데..80년대 후반부터는 b급 영화에도 상당한 경력을 남겼다.




도날드 서덜랜드는 1935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그러구보면 이 할아버지도 참 많은 영화를 남겼다. 특히나 70년대에 좋은 영화를 많이 찍었다. 처음 도날드 서덜랜드를 본 영화는 더티 더즌이다. 리 마빈과 알드리치덕에 거기서 좋은 배우를 많이 알게 되었지..물론 존 카사베츠의 영향도 있었고..서덜랜드의 진가는 초반보다는 후기로 갈수록 더 드러난다. 수많은 감독과 좋은 영활 많이 찍었구 현재도 tv 시리즈와 영화를 왔다 갔다하며 계속 현재진행중인 배우...므찌다능.,.




제임스 칸은 194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영원한 갬블러이자 소니 꼴레오네..최근에 뉴욕 아이 러브 유를 봤는데, 정말 많이 늙었더라..60년대에 새장 속의 여인같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대박이 터진건 70년대 대부와 갬블러를 찍고나서부터 였다. 영원히 청춘일 것 같은 제임스 칸..아들도 배우이지만 아버지에 비해 포스는 덜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