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아 바움바흐, 바움벡 등의 이름으로도 불려지고 있는.. 내게 익숙한 노아 바움바크 감독의 2007년작 마고 앳 더 웨딩을 소개해보고싶다.

브루클린 출신에 현재는 맨하탄에 살고있는, 빌리지 보이스의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와 소설가이자 영화비평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나고 자랐으며 키킹 앤 스크리밍으로 데뷔, 웨스 앤더슨과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의 시나리오를 쓴 노아 바움바크. 현재 헐리우드에서 가장 독립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는 메이저 작가이자 자기반영 영화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톱스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다소 소박한(?) 독립영화에 출연하는것을 즐기기로 유명한 니콜 키드먼이 주연이다. 파 앤드 어웨이, 투 다이 포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다소 실험적인 영화들을 몇 작품(아이즈 와이드 셧) 거쳐 바즈 루어만의 물랑루즈로 톱A급 개런티를 받는 스타가 된 이후로도 줄곧 그녀는 작은 영화들이나 적은 비중에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영화들에 출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콜드 마운틴같은 대작이나 비윗치드같은 편협한 헐리우드 영화들에도 얼굴을 비췄지만 스티븐 달드리, 라스 폰 트리에, 존 카메론 미첼 등 실험적인 주제와 다양한 소재들을 다룬 영화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톱스타 니콜 키드먼이라는 이름이 그녀의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었고 카메론 디아즈나 드류 배리모어 등 비슷한 시기에 로맨틱 코미디 스타로 뜬 톱개런티를 받는 스타들과 다르게 대담한 행보를 보여주어 헐리우드 스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박스오피스에 연연하지 않는 뚜렷한 주관을 보여주었다.

근데 참 희안하다. 나는 니콜 키드먼을 그리 좋아하는것도 아닌데 무기력한 마법에 빠진 것처럼 그녀가 연기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이상한 설득력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곧장 무엇이든 수긍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가 가진 마법이겠지?

영화의 시작은 마고와 그녀의 아들 끌로드가 폴린의 결혼식을 위해 기차를 타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엄마 앞에서 보이는 끌로드의 모습에 불안함은 없지만 어딘가 억눌린 자아를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악을 지르는 것으로 표출한다.


이 모자 어딘가 이상하다.




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나쵸 리브레에서 본 것과 비슷한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의 수염을 달고 있는 잭 블랙이다. 그는 폴린의 약혼남인 말콤이며 그녀의 어머니가 남겨주신 집에 얹혀살고 있고 특정한 직업이 없으며 약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사는 '루저'이다. 전작인 오징어와 고래에 등장했던 루저는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사회에서 타의로 소외된 사람이 아닌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루저가 된 실패한 예술가들..우리는 그들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루저라 부른다.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모른다.

첫등장부터 비호감인 말콤을 삐따한 시선으로 보는 마고는 어딘가 이상하다.

그렇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정상이 아니다. 폴린은 주체적으로 사랑할 힘을 잃어버린 늙은 여자이고 자꾸만 자신을 폭력적으로 몰고가는 언니 마고는 신경쇠약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는 패러노이드. 편집증. 약간의 우울증까지 겪고 있는 소설가이다. 전작 오징어와 고래에서 퇴물이 된 소설가인 아버지를 중점적으로 펼쳐졌던 이야기는 이번엔 어머니쪽으로 옮겨왔다. 셀러브리티라고 추켜세우는 말에 상기된 표정을 숨기며 손사레를 치는 언니 마고는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 하지만 동생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성욕을 감추는 위선자에 불과하다. 게다가 아들인 끌로드와의 관계도 엉망진창이다.





마고는 사춘기를 일찍 지나버린 중학생 소녀같다. 이 나무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 되는데 나무를 보며 집안으로 들어온 마고가 폴린의 부추김에 의해 나무를 타고 오른다. 그러나 그 곳에 올라 잠깐의 환희를 맛 본 그녀는 이내 자신에게 관심을 꺼버리고 등을 돌려버린 사람들을 보며 풀이 죽어 엔진가동을 멈춰버린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것이다. '프리징' 이라고 폴린은 이야기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그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가 아니었나한다. 그녀는 조숙해야할 나이이고 얼핏 품위있는 어른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어린아이같은 활기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병들고 썩은 자아를 주체하지 못해 입밖으로 꺼내지 말아야할 단어들을 무의식속에 꺼내버리고 남에게 상처를 준다. 솔직히 정상인이 없다. 하물며 잉그리드와 끌로드마저도 독특한 성장통에 시달리는 괴짜들이다.

이 영화는 딱히 좋은 영화라고 불릴 구석이 없다. 잘 만든 영화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심오한 철학적 주제를 구겨넣은 실험영화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 정확히 콕 찝어 말할순 없지만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오징어와 고래에서는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경험이 담긴 지식인 계층인 부모의 이혼을 통해 자아마저 상실해버리는 두 아들의 성장통을 다뤘었는데 이 영화는 그 2부쯤 되는 이야기다. 니콜 키드먼의 마고 캐릭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컬트영화로서의 기능마저 상실했을 것이다. 마치 남녀처럼 보이는 끌로드와 마고의 관계를 보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이렇게도 세련되고 끔찍하게 풀어놓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름돋았을 정도.




노아 바움바크의 전처인 제니퍼 제이슨 리가 마고의 동생 폴린으로 등장한다. 이 두여배우의 불꽃튀는 연기대결이 없었다면...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니콜 키드먼의 병적인 눈떨림과 섬세한 손동작, 뱉어지는 저렴한 단어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우아한 말투. 제니퍼 제이슨 리의 창백한 얼굴과 독설을 퍼붓기 전의 입술모양. 두 여배우의 멋진 연기를 보며 겉으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실은 엄청난 감정들이 한 데 모여 복잡하게 흘러가는 가족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숨막혀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끌로드와 마고, 마고와 폴린, 또 마고와 말콤. 그리고 두 자매의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대단한 플롯을 숨기고 있지도 않고 자매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나마 어렴풋이 과거를 짐작할 수 있고 딕과의 결별도 단촐한 대화를 통해 지시된다. 언뜻 가벼워보이는 대사들이지만 많은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고 또 그들이 매우 훌륭한 연기를 해줬다. 난 특히 니콜 키드먼에게 정말 찬사를 보내고싶었다. 이 영화가 오징어와 고래의 속편격이고 감독의 자전적인 성장이야기에 빌어온 것이라는거야 누구나 보고나면 알게될 사실이니 굳이 몇 번을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몇 번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로 놀랍다.




리얼리티가 묻어나다 못해 실제 마고라는 여자가 맨하탄 어딘가에서 갈 곳을 잃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을 것만 같아진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낼 수 없기에 이 영화는 대중적인 테이스트엔 맞지 않다. 실패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밉상 캐릭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도마 위에 두고 심판을 기대하는듯한 대사를 치는 감독의 대담함에 사랑의 키스를 퍼붓고싶다.




언뜻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성공한 언니와 고향인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곳을 지키며 16살때 우리가 거절했을법한 머저리에 루저인 남자를 사랑한답시고 커다란 나무 아래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동생과 그녀의 약혼남을 밉살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언니와의 대립구도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일종의 페이크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플롯의 거대한 틀을 맏고 있지만...

영화 대부분이 미들샷과 클로즈업으로 이뤄진다.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속에 클로즈업된 마고와 폴린, 끌로드의 표정을 읽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감정의 미묘한 변화는 눈빛의 변화나 샐쭉 삐져나온 입술을 통해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이들의 팽팽한 신경전은 '과거'와 연관이 있다. 이것들은 물론 대사를 통해 유추한다. 이 유려한 흐름을 캐치한다는게 어려울수도 있다. 그래서 이 불친절하게 바스락거리는 영화가 그리 달갑지 않을수도 있다. 그런 과거의 아물지 못한 상처들이 대화를 통해 조소에 머물고 때론 서로에게 독설이 되어 날아간다.




그런데 그 무거운 공기를 통해 날아다니던 감정들을 완전히 해체된 것일까?

마고는 폴린을 향해 질투심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다가도 그녀를 보며 측은해하고 또 폴린도 마고를 용서하며 사랑하고싶어하지만 그녀의 노트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원죄를 추궁하는 영화들은 많았지만 과거의 무거운 사슬에 묶인 자매의 끊을 수 없는 정신병리학적인 고리를 다룬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폴린은 결국 말콤에게로 돌아갈 것이지만 마고는 버몬트로 가야할지 맨하탄으로 가야할지 망설인다. 버스에 실어보낸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등을 돌리다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윗옷과 가방이 떨궈지는것도 모르고 전력질주를 한다..

이상하다.

어딘가 이상하다 마고는..

그런데 이상하게 동질감을 느끼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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