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애 영화를 보면서 연애하고싶다 생각해본적이 별루 없다. 게다가 작정하고 만든 로맨틱 코미디에도 절대 동요하지 않고 최루성 멜로는 파이란 이후로 좀 별로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산전수전 다 겪은 여인네들이 나오는 현실적인 신파 영화에도 그저 드라마틱한 구성에 관심을 두는 편이지 '연애하고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기어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조금 달라졌다. 미쓰 홍당무를 본 그 날이었던것 같다. 난 이 영화를 조금 괴팍한 코미디 영화로만 생각했을뿐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성장 영화라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경미 감독이 풀어낸 여자들 캐릭터는 어딘지 모르게 결핍과 이상한 오해들로 가득차있는것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존재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가하는것만 같았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봐도 난 양미숙이랑 닮은점이 많다. 내 얼굴에 침뱉기니까 상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난 이여자를 보고 소름돋을 정도로 놀랬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봤을때 태희를 보고 깜짝 놀랬을때보다 더 놀랬다. 이 여자는 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 나랑 같은 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영화와 드라마들은 캐릭터 위주가 아니라 사건 구성이 핵심이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그 흐름에만 집착을 하기 때문에 시청자나 관객도 캐릭터를 보지 못하는것이다. 그만큼 찰진 캐릭터들이 없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4월에 본 우리집에 왜 왔니의 수강도 양미숙과 비슷한 결과물이다. 플롯에만 익숙해진 시장에서 참다 못해 튀어나온 이 듣보잡 캐릭터들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미숙은 착각의 괴물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나를 위로하고 합리화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것을..'나도 알아 나 별룬거..'
인간이 자신을 객관화 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줄 알고 있나? 사춘기때 자아 분열을 겪어본 당신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숙은 철저히 자신을 객관화 시켜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나같은 캐릭터가 얼마나 분발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취약점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종철에 대한 사랑, 그노무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란 열병이 인간을 어디까지 내몰수 있는지 그것은 분노나 광기보다 더한 병이다. 누구도 끊을수 없는...
좋아하고 연애하고 사랑하는것이 보통의 인간들이 하는 방법이지만 양미숙이나 수강이나 나같은 별종분자들은 방법을 잘 모른다. 좋아하면 앞만 보고 돌진했고 저 사람이 날 사랑한다싶은 착각에 빠져 허우적대다 뒷발로 뻥 차인다. 내 반쪽이 아닐까싶은 미숙을 보며 지독한 자기 혐오나 연민의 감정에 빠진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하고싶어졌더랬다.
다음 세상엔 눈치 빠른 여자로 태어나 기적을 이루고 말겠단 수강의 굳은 의지도 배우고 싶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표현을 똑바로 하고 있는 수줍은 표정의 미숙을 더 닮고싶었다. 앞만 보고 돌진하는 황소같이 고집스러운 나만의 사랑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미안해서 어깨가 축쳐져 있지도 않은 그런 마주보고 할 수 있는 그 '사랑'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