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텀 트웰브




오늘 만난지 한 9년 정도 된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이것저것 옛날 이야기 하다보니 이 영화가 엄청 많이 떠올랐다.

딱히 우리가 한 이야기랑 연관된건 없는데 이상하게 이 영화가 마구마구 떠올랐다.

청소년 위탁소에서 잠깐 머물다가는 아이들을 돌봐주고 지지해주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메인인 인간 성장영화라 할 수 있다.

과거에 있던 불행을 껴안고 어루만지고 서로 보듬어주는 따듯한 영화다. 딱히 안봐도 상관없고 본다고해도 인생이 달라질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가끔...무리하게 소비되는 자신을 느낄때 조용히 차 한 잔 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다들 너무 버둥대지는 말자.




오래된 친구는 참 좋은 것 같다.

모난데가 있어도 서로 손등으로 감싸주고 언제 만나도 반갑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니..돈으로는 살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알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오래된 친구만큼이나 좋은 것이 없다.

발에 딱 맞는 신발같고 너무 좋아해서 매일 듣는 음악같고 엄마밥만큼이나 좋다.








우리의 스물 한 살은 왕가위의 영화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지금은 비싼 보드카 위스키도 사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값싸고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입구만 따면 서서도 먹을 수 있는 캔맥주 마니아였고 (더불어 맥스봉도) 값싸고 양이 많은 안주가 있는 초라한 술집을 드나들었고 그 어떤 시기보다 가장 영화를 많이 봤고, 영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감독님을 쉴드쳤었다. (ㅋㅋㅋㅋㅋㅋ) 지나간 청춘에 후회가 없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부끄러움이 많고 연애에 소극적이었던 너무 순수하고 예뻤던 나도 곧 서른을 앞두고 있다.

교보문고 한켠에 있는 80년대 미국 버거체인같은 멜로디스를 너무 좋아했고, 아무도 모른다에 나오는 아폴로 초콜릿에 열광했고 마츠다 류헤이나 아사노 타다노부가 나오는 (읽지도 못하는) 일본잡지를 알바비가 들어오기 무섭게 사제꼈던..

뭐가 그렇게 신나고 재밌었지?

반디앤루니스 윗층에 있는 유령 푸드코트도 나름 운치있고 좋았다. 사람이 별로 없는게 취향에 맞았던거겠지만..

나는 언제나 성장영화가 좋다. 그 안에 있는 아이들은 사소한 것들을 큰 고민으로 만들고 그 큰 고민은 작은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그렇게 모두의 영화가 시작된다. 우리의 영화도 춘광사설만큼이나 빛나고 아름다웠다.

덜덜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필름 영사기가 거대하게 느껴지고 또 우악스럽고 예쁘기도 했다.

씨네큐브가 필름영사기를 디지털 영사기로 교체하면서 서울에서 필름으로 상영을 하는 극장은 막을 내렸다고 한다. 필름에 자막을 달던 유일한 업체인 씨네메이트도 올 해 1월을 마지막으로 사업을 그만두었고, 필름을 현상하는 마지막 현상소였던 서울필름현상소도 문을 닫았다..

자주가던 종로분식도 오래전에 문을 닫았고 멜로디스도 없어졌다. 자주갔던 (생각만큼 자주 가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상수역에서 극동방송국으로 향하는 중간 골목 사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까페도 없어졌다. (이 곳에서 추억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자주갔던 음식점, 까페, 서점들이 사라지고 친숙했던 골목이 낯선 곳으로 자리잡기까지...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변해간다. 나는 내 자리를 지켜야지..하면서 애를 썼던 시간들에 후회는 별로 없다.

3년간 서울을 떠나 있으면서 느꼈던 고향에 대한 향수는 지리적인 것이 아닌 그 시기에 나에 대한 향수였음을 알았다.짧은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낙원상가, 씨네코아, 씨네큐브, 나다를 종횡무진했던 스물 한 살..스물 두 살의 나!

우리는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에서조차도 애착을 느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굳이 가지 말아야할 곳까지 구석구석 발자취를 남겼고 우리는 수많은 곳에 존재했던 기억들을 심어놓았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거짓말처럼 그것이 눈 앞에 나타난다.

인간은 참 좋은 것 같다.

궂은 일이 있고 비참한 일을 당해도 배가 고프고 식욕이 돌아 삶의 의지가 다시 생기니까
괴로웠던 일들도 편리한대로 편집을 당하니 그것 또한 적절한 기억으로 의식 속에 남아 있다.

덕자의 청춘 1막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호기심 많고 탐구심이 과도하게 넘쳐흘렀던 나에게 서울은 보고 듣고 유용하게 써야할 것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그 전력을 다한 나에게 또 새로운 청춘이 시작되었다. 마치 오랫동안 숨겨둔 선물과도 같은..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먹을 것에도, 입는 옷에도..심지어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다.

될 수 있으면 나는 오래도록 음미되고싶다..유통기한을 넘겨 색이 바래고 칠이 벗겨지고 맛을 잃어도 그 향기만큼은 오래도록 보존되고 음미될 수 있도록 있는 힘껏 전력을 다해서 모두를 즐겁게 하고싶다.


나의 희망사항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지?










+


우리 아이들..꿈 많았을 아이들 그리고 나이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일반인 탑승자들..

생존자의 건강을 염원하고 사망자의 명복을 빕니다.

아직도 부모와 가족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실종자들...

부디 하루 빨리 모두 구조되어 돌아오길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피가 말라가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어머니, 아버지, 실종자 가족분들....

모두 제발..건강 챙기시고,,,더이상 노여워할 일이 없길 빕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애쓰시는 구조대원 분들...탈없이 끝까지 도와주시길..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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