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원에서 빌리 엘리어트를 상영하길래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보고싶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서 보고 왔다.

T-rex의 cosmic dancer. 내가 수백번, 수천번을 들었던 그 익숙하고도 솜사탕같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1970년대부터 지속되어 오고 있었던 광부파업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필요하다. 오일쇼크 이후 대체에너지로 부각된 석탄때문에 광부들은 임금을 올리기 위해 파업을 진행하지만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임금은 동결된 상태로 지난한 파업이 계속되어간다. 대처가 수상이 된 이후의 상황은 전에 비해 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고 파운드 가치 하락, 불황, 석탄을 캐내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 대비 낮은 생산률 등 파업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시점의 빌리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북구 영국의 소도시 더럼을 배경으로 무뚝뚝한 아버지와 괴팍한 형,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와 50센트를 내고 배우는 권투보다 발레에 더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빌리의 이야기. 돌이켜보면 캐릭터 하나하나가 현실적이고 사랑스러웠다. 빌리를 위해 탄광으로 향한 아버지의 두툼한 어깨를 안고 울부짖는 형 토니, 묵묵히 막내 손자를 지지하는 할머니. 아내를 먼저 보내고 두 아들과 할머니를 봉양하는 아빠는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는 사람이지만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빌리가 발레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그 순간에 지난 날의 후회를 토해내듯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린다. 영화를 다시 보면 볼수록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아버지다. 등에 붙은 가죽 패치가 다 낡아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수가 없는 재킷을 입고 동료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된다는걸 알고 있지만 아들의 앞 날만을 생각하며 오늘도 파업에 동참하고 있는 동료들을 뒤로 하고 출근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 그리고 누구보다도 떨리고 기쁘고 희망적이지만 아들 앞에서 기분을 티내고싶지 않은 그 명랑하지만 절제된 발걸음.



빌리를 로얄발레스쿨로 보내면서 버스정류장에서 포옹하는 씬은 몇 번을 봐도 눈물이 터져나온다. 아마도 나는 이 영화를, 이 영화 속의 빌리와 아버지의 관계성을 영원히 가슴 속에 새기게 될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와 더 이상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석탄산업. 빌리의 재능을 키워주고싶은 아버지와 아직 너무나도 아가인 빌리의 뜨거운 포옹. 성장영화에 촛점을 맞췄다라는 평이 많았지만 지금 보면 가족영화에 가깝다.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과 마주한 빌리의 마음에 허리케인 폭풍처럼 불어온 춤에 대한 갈망. 그리고 가족과의 갈등, 그 이후의 화합. 거기에 빌리와 친구들의 개인적이고 인상적인 여러 번의 순간까지. 한 장면도, 하나의 대사나 상황도 빼놓을 수 없는- ...


빌리 엘리어트 널 영원히 기억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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