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 환자를 위한 설명..허영만선생님이 이말년씨를 까는게 아님 최근 추세인 병맛웹툰을 보고 세대가 많이 변했구나..하고 놀라시는거임..)



입시미술 개판 오 분전으로 한 것도 전문적으로 그림 배운거라면 10개월 남짓 배우긴 했는데, 그 때 뭘 했는가 뫼비우스의 띠 같았던 입체 사각형 그리기만 기억나는 나였다.

중2 여름부터 학교에 가기 싫어지기 시작한 나는 중3때는 거의 항명을 하다시피했고 집에서는 항상 대치전이 벌어졌다.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예정에 없던 일이었는데..어머니의 간곡한 권유와 중3 담임, 중1 담임의 협업으로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 계속되는 신경성 스트레스로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매일 가위에 눌려 파리하고 초췌한 얼굴로 학교에 가서 자빠져 잠만 자기 일쑤..왜 학교를 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죽이던 열 입곱살....그 당시 같은반이었던 y는 자는 네 등만 기억이 난다는 식으로 아직도 나를 놀린다. ㅋㅋ 일본어 교사였던 담임하고는 학기초부터 지독한 악연이었는데 교무실에서 촌지받는 걸 우연히 목격하고 더 신랄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지금은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지만 악마같았던 옛날에는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는만큼 괴롭게해야 성깔이 누그러지는 자기파괴형이었다. 아 지금도 그러나? ㅋㅋㅋ갈갈이 찢어죽이자는 생각으로 1:1 데빌매치가 이어지는 나날, 그 여자는 나를 얼마나 미워했을까..명품으로 줄치장을 하고 학생들 명단에서 상위 톱텐을 찍어 노골적인 전화를 돌렸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스컹크같았던 여자,,진로지망서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넣고 뭘 할거냐는식으로 나를 돼지보듯 쏘아봤다. 보란듯이 미술로 적어냈다. 물론 부모님에게 이 사실은 숨긴채로..

당시 나의 어머니, 아버지 성격은 동네에서도 알아 줄 정도로 무서웠다. (뭐 워낙 작은 동네라 서로 집에 밥그릇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 정도였으니까,,,) 특히 우리 아빠..다혈질에 불같은 마산싸나이...뭔가 성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 날은 죽기 직전까지 맞는 날.. 뭔가가 부셔지고 깨지는 날...사실 이런 이야기는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웃으면서 하지 못했는데 정말 나이가 많이 들긴했나보다..그리고 이제 아빠랑 사이가 좋으니까..날 많이 사랑해주시니까..^^^^나는 아니지만^^^^^^^^

아빠한테 말하기는 무섭고 (울아빠는 예체능계열의 ㅇ자에도 불같은 반응을 보였다...) 미술반은 들었는데 다들 백만원이 넘는 개인과외를 받고 유명한 홍대앞 화실에 다니고 학원이 끝나면 과목과외도 몰래 받는등 (당시에 밤 10시 이후에 학원영업이 불법이었으므로) 사교육비는 이미 의무교육 범위를 상회했다. 개코딱지만큼 가진 거는 없었지만 부모님 닮아 자존심이랑 고집만큼은 쇠심줄보다 더 셌던 나는 아빠한테 말은 못하겠고 빌어먹을 학교는 나가야겠고 2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미술학원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학원상담을 하러갔다. 그냥 그림만 그리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송파 끝자락에 별 인기가 없어보이는 학원에 들어갔다. 그냥 정말 아무 생각없이 사람이 별루 없을 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어떤 대학을 지망하지?' 라고 묻길래..아는 대학도 없고, 앞에 붙어있는 그림에 한예종이라고 있길래 그 학교 이름을 대뜸 말했다. 패기돋는 첫상담ㅋㅋㅋ그렇게 가을무렵부터 학원을 나가기 시작했고 학원에서 여자애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디자인하는 친구들이랑 조금 친했는데..),,, 고3때는 더 가관이었다. 선생님이랑 싸움질을 하질않나 시키는대로 안하질 않나ㅋㅋㅋㅋㅋㅋ지겹고 재미없고,,만화책에 나오는 만화를 그릴려구 간건데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재미없고 지겨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학교는 물론 더 심각한 상태였다. 학교를 빠지고 삼성동이나 종로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더 많아졌고 미술담임과 항명+대치중이라 미술수업은 모조리 땡땡이를 치고 있었다,괘씸한 날 가만 둘 인간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엄마한테 몰래 다 일러바치다니..제대로 빅엿 주셨던 고마운 슨상님 그 은혜 잊지않겠소...날이 가면 갈수록 내 성질은 점점 폭발대기중이 활화산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불이 팔팔 끓어올라 물이 넘치려고 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겨웠던 입시를 때려치고 나는 제 1차 헬게이트를 열었다. 내 몸은 점점 더 끈기를 잃어가서 면역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나는 자꾸 벼랑끝으로 몰려졌고 급기야 도망까지 치게되었다. 나약하고 병신에 등신같고 아무것도 가진것도 할 줄 아는것도 미래도 깜깜한 암흑, 그렇게 스무살을 맞이했다. 다른 호랑이들이 봄내음 만끽하며 인생에 처음 주어진 약 몇 달 간의 자유를 맛 볼 때

나는 스스로 택한 교도소같은 골방에 수감되서 깜깜하고 아무것도 없고 허기지고 건조한 봄을 맞이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인생에 깨달음은 불현듯 찾아오는 것인지 어떤건지 쥐뿔 모르겠지만 스무살이 거의 끝나갈때쯤에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채 죽을거같단 생각이 들었다. 세계여행도 해보고싶고 남자친구도 만들고싶고 모아야될 피규어도 많았다. 순전히 나의 물질적인 욕구와 욕망이 나를 바깥으로 이끌었다. 돈을 벌어야되는데 그 돈을 벌기에 앞서 하고싶은 일은 몇 가지 해봐야겠다..싶어서 이 곳 저 곳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가진건 책임감, 성실함 이거 두가지 뿐이었다. 다행이 인정받아 이쁨도 많이 받았다. 미운오리새끼에 사회부적응자 돌연변이 별종 븅신등신 이끼같은 나는 그 때 책도 제일 많이 읽었고, 특히 추리소설 족히 200권 이상 봤다. 영화도 제일 많이 봤다. 하루에 3-5편, 1년에 300편 이상 섭렵, 몸무게도 그 때 제일 슬림했음ㅋㅋㅋㅋ(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ㅋ어ㅋ)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우리 아버지는 나를 보다못해 '막차인생'이라 부르며 비아냥거렸다. 언젠가 또 느즈막히 집에 들어온 날에 쇼파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던 아부지가(울 아빤 보통 기다리지 않는다.)꿈만 쫓다 그대로 끝날수도 있다며 저주했다. 사실 부모이자 현실세계의 어른이자 인생선배로서 조언을 한 것 뿐인데 세상 모든게 다 아니꼬왔던 나에겐 저주로 들렸지뭐야! 왕왕왕. 시간은 흐르고 울엄마아빠도 늙고 나도 나이 한 살씩 먹고 사회경험과 이력은 느는데 수중에 돈이 꼬이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봉사정신과 서비스정신이 투철하고 불쌍한 것은 개, 사람 가리지 않고 간이고 쓸개만 남기고 다 빼주는 특이사항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나는 부탁을 거절 못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질 끌려다니는 것도 주특기였고 쓸 데 없는데(남들보기에)내 소중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것도 아끼지 않았다. 난 세상에서 젤 중요한건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비록 아부지와의 지난 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골이 깊고 아프고 쓰라린 상처들 뿐이지만 나에게 융통성없는 정직함과 뼈가 부러져도 근면성실, 주머니에 동전 몇 개만 있어도 우아하게 있는척하는 대담한 허세, 맡은건 기를 쓰고 끝까지 하는 책임감이 나에게 물려주신 소중한 자산이라는걸 나이 들수록 깨닫게 되었다. 인간이 가진 가치는 황금과도 바꾸기 어려울 정도의 여러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몇 년을 보따리장수로 독립군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못생긴 잡초로 나의 선생님들(히치콕..빠졸리니..고흐..주옥같은 나의 선배들, 선생님들..)에게 부딪히며 배운 것은 끈기+성실+노력+정성이 없는 작품은 그 작은 그릇에 진정성을 담아낼 수 없다는 진실과 사실이었다.

난 꼰대한테 빅엿 먹고 말아먹은 유년기가 길기때문에 꼰대같은걸 정말 싫어하지만(꼰대라는거에 여러의미가 있는것으로 알지만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꼬장꼬장하게 옛날 얘기만 하고 젊은이들 무시하는 호호할배들임) 예술가로서 융통성없는 근성이 필요하다구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면 너는 표류하게될거야.

종이가 화면으로 대체되더니 사람들은 굳이 머리굴려 생각치 않아도 되는 일회성 문화를 소비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영화는 이벤트무비, 데이트무비, 팝콘무비보다 더 지독해져 일회용품이 되고 있다. 소설이나 에세이는 넋두리나 감성팔이글 몇 줄로 인세를 도둑질하고 사람들의 뇌를 가볍고 몸과 치아에 좋지 않은 탄산음료처럼 물들이고 있다.

너희들이 말하는대로의 자본주의 디지털사회라면, 소비되기 위한 자본이라면 적어도 그 자본에 믿음직스러운 가치는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오로지 즐거움만을 주기 위한 문화라고해도 가벼움이 지나쳐 경박스럽다. 만드는 사람도 가벼운 마음으로 휴지에 똥 닦듯이 슥 만들어낸다. 별 생각없이 즐기기때문에 버리고 잊기도 쉽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면 그만이다. 종이만화 시장이 사장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만화가들이 웹으로 둥지를 틀었다. 인터넷은 뿌리부터 가벼운 공간이었다. 익명이고 누구나 자유롭게 새로운 인격체가 될 수 있는 사이버세상이기때문에 우리의 죄책감이나 도덕관념은 현실세계에서보다 마이너스 백, 천, 만 무한대를 찍을 수 있다.

난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성별, 나이나 국가, 종교관이나 자녀수, 재산이 얼만가, 지지하는 정당, 흡연 유무, 채식주의자에 관계없이 모두 예술가. 예술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의 책임감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내야한다. 노동자가 아닐때는 예술가는 창작의 고통을 짊어진 우수하고 보통사람보다 명민하고 우월한 사람들이라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었음을 나는 인정한다. 나는 아직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가지망생으로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살아보니 세상을 움직이는 위대한 사람들은 그림을 그려 파는 환쟁이나 음악을 만드는 딴따라, 지식인이랍시고 감히 머리위에서 가르치고 조종하려드는 정치가들이 아니라 쌀을 만들어내고 기계를 움직여서 물건을 만들어내고 똥을 치우고 세상의 추잡스러운 먼지를 치우는 사람들이라는걸 알았다. 예술가들은 대중들의 사랑을 먹을 수도 있고 못받아먹을 수도 있다. 아방가르드, 그로테스트 아티스트도 있지만 대중적인 아티스트도 많다. 뭐 다 같은 예술가다. 중요한건 진정성. 매니악하든 대중적이든 결국엔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 하고 헤맬 정도의 작품을 내는 놈은 자기 자식을 반쪽짜리로 세상에 내보낸 양심에 털난 작자들이다.

최근 많은 젊은이들은 츄잉껌 같은 웹툰을 그리고 소비한다. 5분이 지나면 껌은 딱딱해지고 맛대가리가 없다. 예술가는 자기 작품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예술은, 문화는..연필과 붓은 칼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엔 모두 지치고 신물나고 질려서 아날로그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문화는 그 안에 정성을 담아야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최근에 급부상한 인기작가 g의 행동을 보고 나는 너무 실망했다. 인기도 많고 돈도 많이 벌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왜 더 신나서 열심히 하려는 생각을 못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결국 그 사람이 가진 내공은 그것밖에 없는 것이다. 밑천이 벌써 털린 것.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질타한다. 물론 그 병맛같은 만화 내 취향은 아니지만...창작자의 고통을 알기에 측은하기도 하지만 프로는 그러면 안 된다. 테즈카 오사무는 1등이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1등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해의 모든 주목받는 신인과 작품을 빠짐없이 매번 챙겨볼 정도로 항상 최상의 위치, 최상의 작품 퀄리티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엄청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자신의 작품에 부끄러움이 남지 않도록 했다. 무릇 테크니션은 프로는 그래야한다. 빠르게 만들어진 문화는 빠르게 소멸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나는 가끔 세상이 어디로 가고있나 무서운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너무 가벼워져 중력의 힘을 무시하고 사람을 가볍게 죽이고 가볍게 연애하고 가볍게 결혼하고 가볍게 이혼하고 가볍게 아이를 죽이고..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세상이 너무 무섭다. 그리고 더이상 마스터나 마에스트로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사람이 되는게 소름돋을 정도로 신기하다. 

터널같은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얻고 배운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재산이고, 사회에서 못난이로 배우고 얻은 가치들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것들이다. 소중한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잊기 쉽다. 그럴 때 우린 그 가치의 소중함을 자꾸 일깨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들이 해야할 몫이 바로 그것들이다. 맑은 공기의 소중함, 청정해역과 나무 수만그루의 가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돈보다 소중한 가치...

난 꾸물꾸물 기어가더라도 그것을 꼭 이루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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