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었던 두 여배우가 주연을 맡은 두 영화를 보았으나

둘 다 개운하지 못하게 아쉬운 영화였다.


<악녀>에 대해서는...

내가 정병길의 악개라 누가 개노잼이라고 욕하면 조목조목 따져줄 생각은 있으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다는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혼을 갈아 만든 액션씬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 재가 되는 동안 서사와 감정선은 시궁창에 처박히게 되었으니..

섹시하고 또 투머치 섹시해서 웃통 까고 서있는 것 만으로도 그저 한 폭의 그림같은 신하균과 독하디 독한 숙희지만

또 고매하고 우아한 여배우 채연수가 될 수도 있는 김옥빈의 조합을 이렇게 끝내야한다니. 너무 아쉬울 수 밖에-

정병길. 나는 그를 너무나 아끼고 좋아한다. 여건이 된다면 2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어주셨으면 할 정도로 좋다.

그래서 나는 기대가 컸다. 전작 [내가 살인범이다]도 쩔었기때문이다. 물론 배우 중 한 명이 씻을 수 없는 병크를 일으켜 다시 돌려볼 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 안타깝지만.

<악녀>는 여러모로 너무나 아쉬운 작품이다. 물론 액션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할 필요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는 거의 맥시멈을 찍었다고 보면 된다. 후반부에 중상이 타고 있는 마을 버스를 쫒는 숙희가 자동차 액셀에 돌을 박아넣고 유리문 밖으로 나가 체이싱을 하는 장면은 뭐 예산이 적은티는 좀 나지만 돈으로 처바른 헐리우드 액션영화들과 굳이 비교할 생각은 없지만 누군가 비교한다고 하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

비록 저예산이라 때깔은 곱지 못할지언정 그 살아있는 액션의 강도는 세고 또 세더라. 호흡이 가쁠 정도로 몰아치는 액션, 그리고 또 액션. 액션의 높은 퀄에 비해서 멜로나 중상-숙희의 감정선이 들어가있는 부분은 80년대 영화에서나 봤을법한 익숙한 그리고 구태의연한 대사들의 하모니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유치했다. 또한 흐름상 숙희와 중상의 과거부터가 아니라 숙희가 중상이 살해당했다고 믿고 복수를 하러 잠입하는 부분부터 시작하기때문에 정제된 시나리오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이 불친절한 서사와 몰아치는 액션에 진절머리가 날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것도 과하면 체하는 법...이런 저런 클리셰들이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장총을 든 신부라던가. 가죽옷을 입고 샤기컷을 한 올블랙의 여전사라던가. 등등. 오마주 또는 클리셰이겠지만 액션 연출은 좋았다. 그러나 액션을 위해 이 영화가 존재하고 서사가 존재한다면 그 서사는 좀 더 심플하고 차라리 담백해야했다. 애꾸눈을 가진 여자나 수라설희가 그러했던 것처럼 숙희의 복수는 더욱더 차가워야했고 그녀의 차가운 액션만큼이나 밑에 깔린 서사들은 담백하고 감정선은 1차원적이어야했다.

이 혼잡스러운 이종교배로 인해 숙희의 캐릭터는 갈팡질팡. 좋았다고도 아니 그렇다고 나빴다고도 할 수 없는 아주 애매한 자리를 선점해버린 것이다...

권숙이 숙희에게 현수와 그렇게 만나지 말았어야할 것을..이라고 대사를 치는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나는 탄식했다. 권숙을 맡은 김서형은 남성적인 짧은 숏컷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가죽 장갑을 끼고 짙은 아이라인에 길고 진한 마스카라. 권위적이고 섹시하고 차가운 대사들을 흩뿌리는 것이 능숙한 연기자다. 그런 그녀에게 이 정도의 대사를 주다니...이것은 능욕이 따로 없었다. 각자의 사연을 제대로 버무릴 수 없다면 가지치기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때로는 영화의 즐거움을 2배로 만들어준다. 액션 장면이 끝없이 이어지는 그 피로감에 관객의 머릿속은 이미 복잡한데 어설프게 엮인 인물관계와 그보다 더 어설픈 감정들은 결국 허공을 떠돌다 그대로 추락한다.

그녀는 <악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순수하고 약한 여자였다. 이 안타까운 영화를 어찌하면 좋을까.





<용순>....

이도 참 안타까운 영화다.

거친 성장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너무나 좋은 성장영화들을 많이 봐왔기때문에 <용순>에 감정이입하기도 몰입하기도 어려웠다.

용순이 사랑을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너무 투박하고 거친데다 성장이라는 과정은 거의 배제하고 갈등 9 봉합 1로 마무리되는 성급한 감정의 흐름이 얼마나 감독이 섬세하지 못한가 탄식했다.

용순이뿐만 아니라 이 영화 속 주인공 어느 누구도 또렷한 자기주장을 하고있는 캐릭터가 없었다. <좋아해> 스러운 멜랑꼴리한 영화를 기대했건만 악다구니만 듣고 나온 기분. <차이나타운>에서 봤던 이수경이라는 연기자의 얼굴은 참 좋다. 그 또래가 가지고 있을법한 불만에 가득찬 얼굴 그대로다. 그러나 영화의 감정선은 섬세하지 못하다.

그 나이대에 가졌을법한 특정한 대상에 대한 사랑이 공감이 갈 정도로 애틋하고 아련한 것이 아니라 아쉬웠다. 아니 아쉬웠다기보다 영화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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