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니 품에 쏙 들어가는 줄리엣타..넘 귀요미^^



젊었을때 두 사람의 모습



정말 그림같고 영화같은 한 쌍의 벌레들ㅎㅎ



죽을때까지 같이 살았다..펠리니는 93년 10월에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줄리엣타는 94년 3월에 그를 따라 하늘로 가는 것처럼...암으로 운명했다. 증말 기이한 운명이다. 불과 몇 개월 사이로 숨이 끊어지다니....너무 영화같은 죽음이다...



난 언제나 영화 자체로 영화를 말할 수 있는 감독은 세 명뿐이라고 생각한다. 루이스 부뉴엘과 로베르 브레송, 그리고 펠리니..

펠리니는 위대한 감독이었다. 그리고 줄리에타는 그의 가장 큰 영감의 샘이자 페르소나, 그리고 운명적인 사랑..또 배우자이자 인생의 동반자, 좋은 동료이자 친구 그 이상이었다. 펠리니와 줄리에타는 시나리오 작가와 라디오 성우로 만남을 가졌다. 펠리니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전엔 그림에 뜻을 두고 미술을 공부하고 풍자만화를 즐겨 그렸는데 만화잡지의 편집자를 역임했을 정도로 만화에 소질이 뛰어났다. (좋은 감독들중엔 만화가 출신이 여럿 된다는게 괜히 뿌듯^^) 풍자만화를 판매하고 그리며 지내던중 펠리니는 1943년에 줄리에타가 출연하는 라디오 드라마의 대본을 쓰게되는데 그 때의 만남을 계기로 둘은 사랑에 빠지고 부부의 연을 맺는다. 펠리니의 나이 23살, 줄리에타의 나이 22살에 생긴 일이었다. 둘의 운명은 너무 신기해서 놀라울 정도.
펠리니가 1950년에 버라이어티 라이트(청춘군상)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하기전까지는 시나리오를 썼었는데 1945년 네오 리얼리즘의 패러다임을 개척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인연으로 46년 파이자(울나라에서 전화의 저편? 이란 이름으로 개봉했을걸..)의 대화씬과 스토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 때 줄리에타는 생애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1948년 라투아다 감독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인연으로 그는 펠리니의 생애 첫 영화감독 데뷔작 버라이어티 라이트의 프로듀서가 된다. 물론 줄리에타 마시나도 출연한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첫 말머리에서 주제를 잡지 못하거나 의도한 바의 갈피를 잡지 못해 수렁에 빠진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데 반해 펠리니는 첫 영화부터 펠리니적인 주제와 특징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었다. 펠리니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유랑극단의 광대들이 등장하고 리얼리즘을 표방하면서도 인간적인 정이 담긴..그야말로 펠리니의 초기작인 것.
그뒤로 펠리니는 백인추장과 옴니버스 작품을 만들었고 1954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한 길을 만들게 된다. 이 영화는 베니스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고 키네마 준보에서도 수상하는등 전세계에 페데리코 펠리니의 이름을 각인시킨 강렬한 영화가 되었다. 백치에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이탈리아의 여자 찰리 채플린으로 불렸던 줄리에타 마시나와, 세계인 그 누구도 될 수 있었던 천재적인 메쏘드 연기파 안소니 퀸의 열연과 페데리코 펠리니의 처연하고 사실적인 리얼리즘과 인간미가 넘치는 소박한 연출등이 빚은 최고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아직도 항상 펠리니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누구나가 펠리니를 떠올릴때면 가장 우선순위에 꼽는 영화이기도 하다.
1955년 펠리니는 범죄드라마 사기꾼들을, 57년에는 줄리에타의 연기가 돋보이는 카비리아의 밤을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펠리니의 영화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길의 성공이후, 1960년과 1963년에 페데리코 펠리니는 다시 한 번 세계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인두로 지진 것만큼이나 더욱 강렬하게 새기게되는 일이 있었으니..그것은 달콤한 인생과, 8과 2분의 1의 탄생이었다. 일생의 좋은 파트너이자 친애하는 배우이자 막역한 친구사이였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세기의 걸작이 탄생했다. 마스트로얀니는 이탈리아에서도 제일 가는 배우로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영원한 배우로 기억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실험과 기존의 네오 리얼리즘의 계보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창조한 펠리니는 펠리니 그 이외에 다른 어떤 단어로도 규정할 수 없는 거인이었다.
세계적인 환호 뒤에 그는 또 다른 환상의 실험작 그의 첫 컬러영화인 영혼의 줄리에타를 내놓았지만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다. 줄리에타를 위해 만든 영화라는 설도 있지만..단순히 그녀를 위해서만 만들었다기보다 이 영화의 배역을 그녀만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없었기때문일지도 모른다. 영혼의 줄리에타는 단순히 서사구조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기에 텍스트를 읽으려는 노력은 허사에 불과하다. 전위적인 미쟝센과 화려하고 다소 위압적인 색채의 과용, 화려한 패션과 초현실주의적인 연출들..내면의 감정과 기분 등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는 자유롭게 허물기때문에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대담한 영화이기도 하며 혹은 불친절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실패로 그와 여러 작품을 함께한 리졸리(그는 여러 좋은 영화를 성공시킨 이탈리아 제작자)와 결별했고 그는 4년동안 새로운 제작자와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로제 바딤, 루이 말과의 옴니버스 작업 이후 1969년 알베르토 그리말디와 사타리콘의 제작을 끝마쳤다. 사타리콘은 영혼의 줄리에타의 실험이 이어지는 작품으로 원색적인 색채와 과감한 기법들이 주를 이뤘다. 물론 이것도 서사는 안드로메다로...
1970년 그는 다시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로 돌아와 광대들을 연출한다. 서커스와 극단, 광대들. 가장 펠리니적인 이야기를 다룬, 자신의 자전적 소재와 기억들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향수와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작품이 되었다.
1972년에 제작한 로마와 73년에 만든 아마르코드는 각자 자전적인 기억과 경험, 오마주인 셈이지만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로마가 꼴라쥬 타입의 영화라면 아마르코드는 드라마 기법을 고수한다. 두 작품 모두 펠리니의 사랑이 담긴 뛰어난 작품이 되었다.

펠리니는 그 뒤로도 오케스트라 리허설, 시티 오브 우먼, 그리고 배는 간다, 진저와 프레드, 달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나는 후기 작품 중에는 진저와 프레드를 무척 좋아한다. 알다시피 진저는 진저 로저스이며 프레드는 프레드 아스테어다. 헐리웃의 뮤지컬 흥행기에 콤비를 이루며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두 배우의 이름을 딴 진저와 프레드에는 줄리에타가 등장한다. 이 영환 줄리에타가 찍은 마지막 펠리니 영화다. 향수를 자극하는 점 외에도 주름이 지고 노쇠한 두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컹거릴 정도로 감정을 자극하는 영화이기때문에...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두 배우는 펠리니의 페르소나로 여러 작품에 출연했지만 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연기를 한다. 정말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최근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출연한 나인에서도 그의 영화를 오마주했지만..펠리니의 위대하고 기이한 세상은 그 어떤 계보도 없지만 수많은 감독과 배우에게 큰 영향을 준..예술이었다.
그리고 그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여인 줄리에타 마시나, 두 남녀의 길고 투명한 사랑과 파트너쉽은 보기만해도 아름답다. 그리고 펠리니의 거의 모든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니노 로타, 기가막힌 편집예술을 보여준 레오 카토조, 끝내주는 앵글을 선사한 오텔로 마르텔리, 지아니 디 베난조..등등...
그의 영화는 너무나 위대하다. 날카로운 기지나 예리한 이성은 없지만 대신 풍만한 해학과 두터운 정이 있다. 그리고 예술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못 할 연출....그 느낌과 감정들...놀랍다..보면 볼수록 놀랍고 새로운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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