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주 울적한 일이 있어서 이대로는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애정만세란 영화를 본 일이 있었다. 메이라는 주인공이 사랑을 받을 수도 사랑을 줄 수도 없는 상황에 시달리는..외로움에 사무치는 절절한 영화였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된 것은 이강생이란 배우때문이었다.
샤오강은 분양되기 전 아무도 없는 아파트에 몰래 들어가 숙식을 해결하는 남자다. 이강생의 모습은 생각맨해도 눈물이 난다. 사실 지금도 눈물이 뚝뚝 난다. 편의점에서 물을 여러개 사들고 거울로 머리를 정리하는 샤오강. 오늘, 어제 그리고 그와 똑같을 내일을 생각하면서 거울 앞에 앉아 칼로 손목을 그으려고 돌연 내려놓는 샤오강. 정말로 삶을 포기하고싶어서가 아니라 내일만큼은 달랐으면 하는 절실한 의지였겠지..내게 손목에 칼을 들이대지 않게 해 줄 따듯한 사람이 없을까? 수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샤오강은.
메이가 데려온 아정과 알게된 이후로 둘은 빈 아파트를 몰래 드나들며 서로의 존재에 대해 부분적으로 인식은 하게 되었다. 옷을 조금씩 띄어다 파는 아정이 집을 비운뒤 그의 짐을 뒤지다가 민소매 드레스와 구두를 찾은 샤오강은 방에서 새어나오는 빛에 의지해서 옷도 입고 구두도 신어 본다. 샤오강이 애처롭다가도 내 처지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에 설움이 밀려온다. 더욱더 슬픈 장면은 찌든 외로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메이와 급작스럽게 만난 아정이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아무런 대화도 그 어떤 로맨스도 없이 관계를 맺을때 매트리스 아래에선 또 하나의 완벽히 소외되고 외로움이란 벽안에 고립된 존재 샤오강이 누워 있는 장면이다. 아정을 사랑하는 샤오강의 기분은 어땠을까..다 벗고 누워 있는 아정 옆에서 자신의 재킷 자락을 쥐었다 폈다, 그를 바라보면서 설레임과 망설임, 욕망과 갈구의 눈빛이 오가는 이강생의 얼굴..진정 무슨 단어로 이 남자를 표현해야한단 말인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지상에서 가장 외로운 씬이 펼쳐진다. 메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린다..들리는 사운드도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 하나뿐이고..주변은 평화로운 바람과 풀, 그리고 겹겹이 놓여진 벤치만이 있을뿐..아주 천천히 틀어지는 메이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그렇게 5분이 넘도록 그녀의 우는 모습만을 바라봐야한다.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들썩이는 어깨에 너도 울고 나도 울고 콧물이 울음이 되고 울음이 소리가 되어 아..이렇게 사는 것이 팍팍하다니..
예전에 17살때..날 쓸모없다고 여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물론 그분께도 생각이 있었겠지만..나같은 별종을 인간 취급도 안하셨다. 그리고 여지껏 나는 일반적인 무리에 제대로 끼어들 수가 없었다. 대화를 나눌때에도 무언가를 결정할때도..
나는 가끔은 내가 세상에 필요하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라면 이곳에 맞지 않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때 서로의 존재감을 확인할때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될까?
메이는 매일 혼자 밥을 먹는다. 급하고 빠르고 거칠게 음식을 먹는 메이. 친구도, 가족도, 애인도, 동료도 없는 그녀에게 밥을 먹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밥을 혼자 먹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지금도 매일 혼자 밥먹는 일이 많고 예전에도 거의 매일을 혼자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먹는다는것 먹는걸 나눈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는 가장 친밀한 형태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맛있고 즐겁게 먹기를 원한다.
메이에게는 결국 볶음밥을 맛있게 나눌, 케잌 한조각을 나눠먹을 사람이 생길까?
결국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세상은 먼지와 공기로 차있고 어디를 가도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얘기를 나눠주는 사람도 없다. 더 많이 가질수록 행복해지는 것일까 아니라면 가진게 없어도 배부른 행복이 있을까? 이제는 무엇을 해도 어떤 것도 되고싶지 않다. 코끝이 시큰해질 정도로 참는 것도 어려워진다. 빠른 체념과 침묵을 배워야겠다.
나는 소박하고 예쁜 삶을 살고싶다. 작은 것의 가치와 그것들이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런 상태는 나의 자리가 아닌 것 같기에 그만둘 필요를 느낀다. 공허한 상태에서 나누는 시시껄렁한 대화들 보다는 혼자 차려 먹는 밥이 더 낫다.



보다가 기진맥진할 정도로 공허하게 만들만한 영화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답으로 돌아왔던 차이 밍량의 애정만세. 만난지도 벌써 4년째인가,,현대인의 고독을 기가막히게 잡아냈다는 중경삼림하고 같은해에 태어난 작품, 그러나 왕자웨이 감독의 인기가 치솓을때 차이 밍량을 아는 사람은 매니아 정도. 감성적이거나 겉치레같은 영상미는 없고 워낙 건조하고 메마르다 보니까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게 되는..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차이 밍량의 영화들을 보면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지독하게 건조하고 초현실적으로 고독한 영화들. 처음 봤을때는 사랑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메이가 불쌍해서 울었고 다음에 볼 때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가갈수없어 혼자서 훌쩍이는 샤오강때문에 울었다. 엔딩에서 메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소리내어 울먹이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손꼽히는 장면인데 보다보면 같이 목놓아 울게된다. 소리도 냈다가 울음도 삼켰다가 눈물때문에 시야가 안보이다가 여러모로 날 울렸던 장면인데 영화를 여러번 볼수록 그 장면뿐만 아니라 아정과 메이의 정사 때문에 침대 밑에 숨어 우는 샤오강의 모습에도 울음이 나고 욕실에서 드레스를 입고 걷는 샤오강의 모습에 또 울음이 난다. 상처뿐인 사람들. 사랑도 할 수 없고 사랑을 받을수도 없는 현대인. 엊그제 새벽에 나눴던 대화가 또 떠오른다. 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만나는지 이해할수 없다는 나의 물음에 은지는 어른스럽게 대답해주었다. 외로우니까.
답답하다. 속도 바깥도, 명동역이고 홍대입구역이고 재빠르게 지나치고 부딪히고 사라지는 사람들, 모두 속 꺼내놓고 사랑해주면 좋을텐데 저마다 자기 방어하느라고 바쁘다. 그러다보니 서울은 더러운 먼지와 더운 공기들로 가득찬 각박한 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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