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for my god. 찰리 채플린!
지금 찰리 채플린 책 읽고 있는데....그의 생애를 다시 함 생각해보며.....떠올려봐야겠다..
4월 16일 오늘은 찰리 채플린 탄생 121주년되는 날입니다.
내 인생을 조금이나마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주고..내게 기쁨과 눈물의 의미를 알려준..당신께 나의 모든 유의미한 영광을 돌리겠소! 하늘에 있지만 언젠가 만날 것이기에..조금만 그리워하겠수..ㅠㅠ 아아 보고싶은 찰리. 지금 당장 시티 라이트라도 보고 자야겠어요...아이 러브 유! 사랑해요 찰리 채플린!!! ♥♥♥





종종 미국 역사를 들먹일때 매카시 광풍이란 말이 쓰이기도 한다. 이 매카시의 매카시란 조지프 매카시란 인간의 이름으로 1908년에서 1957년까지 산 정치가이다. 그는 그 이전까지 유례없는 반공 운동과 빨갱이(?) 색출 작전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그 가운데 헐리우드의 공산당 찾기도 유명했다. 당시 엘리아 카잔은 청문회에서 30년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전례를 고백하고 헐리웃에서 일하는 친구와 동료들 중 공산당원들의 이름을 불었다. 그 이후로 그는 배신의 아이콘, 밀고자로 헐리우드에 낙인 찍혔다.
이 동영상은 1999년 로버트 드 니로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엘리아 카잔에게 평생 공로상을 시상하는 장면이다. 영상을 보면 보이는 사람으로만 찾자면 워렌 비티, 스티븐 스필버그, 로라 던, 캐시 베이츠, 커트 러셀, 메릴 스트립 등은 박수를 치며 일어서지만 짐 캐리, 홀리 헌터, 에드 해리스, 닉 놀테(그는 정말 강력하게 그를 부정했다.) 등은 묵묵히 앉아 박수도 치지 않고 있다.
매카시 광풍은 떳떳한 바람이었나? 절대 아니다. 그는 미치광이였고 극단적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그는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48세의 짧은 나이에 죽었다. 그렇다면 엘리아 카잔은 언제까지 살았느냐고? 무려 94살까지 사셨다. 1909년 현재는 터키 이스탄불이 되어버린 곳에서 태어난 이 그리스인은 외국인 추방이 있기전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와 정착했다. 매카시 광풍에서 자신의 소신과 대의를 위해 친구와 동료를 팔았던 그는 배신자와 밀고자로 낙인 찍혀 숱한 비난과 욕을 먹었다. 그러나 그는 1945년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를 만들기 시작한 그 이후부터 줄곧 끝내주는 영화만 만들었다. 그는 스펜서 트레이시, 캐서린 햅번과 초원의 바다를 찍었고 다나 앤드류스와 부메랑을 만들었다. 그레고리 펙과 찍은 신사협정으론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고 리처드 위드마크와 찍은 거리의 혼란으로는 베니스에서 수상했으며, 말론 브란도와 찍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비바 자파타, 워터프론트로는 작품으로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고 아카데미를 석권했으며 말론 브란도라는 세기의 배우를 배출시키기도 했다. 그 뿐인가? 밀고자 사건이 있은 후로도 그는 에덴의 동쪽과 초원의 빛을 찍어 역사에 남을 영화를 남긴것은 물론 제임스 딘과 워렌 비티라는 청춘의 아이콘도 탄생시켰다.. 그 후로도 군중속의 얼굴, 아메리카 아메리카, 와일드 리버 등 명작을 남겼다.
엘리아 카잔의 업적은 분명 뛰어나다..멋진 영화를 너무 많이 만들었고 그의 영화에서 배출시킨 멋진 배우들도 너무 많다. 워렌 비티..제임스 딘..나탈리 우드..그리고 말론 브란도! 그러나 그의 배신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아카데미의 저런 식의 처사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범죄행위인 배신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졌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프리츠 랑을 비롯해 에른스트 루비치, 빌리 와일더 등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듯이 조셉 로지와 채플린도 매카시 광풍을 맞아 떠나야 했으며 그들의 업적은 빨갛게 물들었으며 그 다음에 있을 영화들은 상처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로지의 말년의 영화들을 보라.)





자, 그럼 여기 1972년의 영상을 보자. 그는 단지 고마워하고있을 뿐이다..이곳에 초대해준 여러분께 감사하고, 또 고마워할뿐...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누구냐고? 찰리 채플린이다. 나의 신이자 또 다른 아버지, 찰리 채플린..옆에서 모자와 지팡이를 주는 이는 나의 또 다른 무한엔돌핀 잭 레먼이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를 찍은 이후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인은 없으며 그의 영화를 보고 웃거나 울거나 하지 않은 대중은 없다. 그는 영화의 이름이자 역사다..그런 그나 매카시즘이 불어닥친 50년대에 결국은 실질적인 마지막 작품 라임라이트, 킹인뉴욕 등을 찍고 사라졌다..ㅜㅜㅜㅜㅜㅜㅜ매카시 나쁜시끼ㅜㅜㅜㅜㅜㅜ....아카데미는 그에게 평생 공로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 되었다.


엘리아 카잔의 업적은 업적대로 인정하되,,나는 그의 배신 행위를 용서하기가 어렵다..아트시네마에서 곧 엘리아카잔 특별전이 열린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군중속의 얼굴 정도는 보고싶었는데 그 영화는 하지 않는다. 워터프론트로 자신의 할 말을 대신 한 엘리아 카잔, 그가 나쁜점은 배신을 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는 점이다. 여러모로 씁쓸한 일이다. 그가 고발해 나라를 떠나거나 일을 접어야했던 많은 동료들은 일찍이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누가 사살했으면 좋겠다는 증오를 받았음에도 2003년까지 살았다. 역시 욕은 먹을수록 오래 사나보다. 우리 나랏님은 100세까지 사시지 않을까.









나중에 내 자서전에 쓸 내용이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한 것은 부모님이나 기타 다른 것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정체성이나 가치관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사춘기때 만난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4분의 1 만큼도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펠리니는 지나간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대해 알려준 최초의 사람이다. 마술같은 신비로운 힘. 전혀 다른 세상에 빨려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내 인생 최초의 마약, 그의 영화를 보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찰리 채플린은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두 번째 아버지라고 부르고싶다. 그의 영화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키드와 시티 라이트, 그리고 라임 라이트다. 키드는 무르나우의 마지막 웃음만큼이나 페이소스를 극대화 시킨 희극이었다. 시티 라이트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나누고 싶은 사람과 함께 보고싶은 영화이고 라임 라이트는 죽기 직전에 보고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찰리 채플린은 내 인생의 전부와 함께 하고 모든 것에 영향을 준 사람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전문적(?)이고 본격적(?)으로 영화에 입문할 때 가장 도움이 된 스승이었는데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함뿐만 아니라 영화의 오락적인 재미까지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어떤 작품을 그리게 된다 하더라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영화는 반복해서 보고 있을뿐만 아니라 내가 닮고싶은 부분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존 휴스턴은 일반적으로 봤을때 루저인 나에게 도움이 되어준 사람이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사회적 경계 바깥의 사람들, 일반론적으로 봤을때 평균 이하의 사람들,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들, 욕망에 충실하고 정직한 사람들. 그러나 마음이 약하고 순수한 사람들. 기인들은 내가 꼽는 그의 베스트다. 이런 영화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어떤 교과서보다 뚜렷한 철학을 가르쳐주는데 그보다 더 고마울수가 없었다. 큐브릭...그는 나에게 테크닉적인데 있어서 장인 정신을 가르쳐준 사람. 평소엔 덜렁대는것 투성이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함과 꼼꼼함을 추구하는 내게 있어선 가장 큰 역할 모델이다. 1mm까지 신경 써서 촬영하는 완벽주의자. 그의 모습은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형태의 일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이 인간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일수있다면 좋으련만..죽어있는 시체의 뼈라도 잘게 부수어 몸속에 넣고싶을 정도로 존경하는 사람..
그리고 주성치. 이 남자는 나에게 작은 멘토다. 사는게 거의 고난의 연속이니까..가끔 힘들때 기대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성치. 그의 영화를 보는것 자체가 인생의 활력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희극지왕 그리고 서유기 시리즈.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스트레스같은건 잊게 된다. 사람을 대할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두를 대할땐 진심으로 거짓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를 알려준 것도 주성치의 영화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법, 애정을 쏟는 법, 진심으로 웃을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것도 그의 영화다. 마지막으로 빠졸리니..무한 애정의 대상. 죽음이 한스러운만큼 죽을때까지 사랑해주려한다. 내 평생의 연인을 삶고싶을 정도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 그의 영화가 정식 개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고 투쟁적이며 영리하고 착하고 드넓은 사람. 이런 남자와 같은 시대를 살지 못했다는점이 아쉽고 분통하다. 멀리 찾을것도 없이 내가 사회적으로 배워야할 모든 것은 그의 영화 속에 있었다. 매와 참새를 처음 보고 얼마나 반가워했었는지! 너를 이제야 만났구나! 아 살아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그렇다면 이탈리아로 날아갔을텐데..! 분하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러워 식도로 음식물이 넘어올 것만 같다고 생각했었지. 나에겐 가장 어렵고 풀어야할 숙제이고 넘어야할 산같고 관에 같이 들어가고싶은 존재인 빠졸리니. 언젠가는 나란히 같은 곳에 서있게 되기를.



2007년인가 암튼 그 때 가을에 아르바이트 끝나고 너무 절박해서 택시를 잡아탔지 늦을까봐 헐레벌떡 뛰어내려가서 맨 앞자리에서 시티 라이트를 보았지, 남자가 꽃파는 소녀를 처음 발견했던 그 장면부터 눈물이 마를새없이 뚝뚝 그러다 펑펑 흐엉 어깨를 들썩이면서 울어댔지 맨 앞자리에 혼자 앉아서 청승맞게

그냥
그렇다구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했을때 누가 나에게 잘못했을때 저 꽃 한송이면 다 잊어버릴수있을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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