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은 신파 멜로에 가깝지만 그리 단순한 영화는 아니다. 예술가의 철학적 고백이 담긴 이 영화를 나는 그가 가졌던 많은 무기들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적시게 만들었다고 말하고싶다.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되는 날이 있다면, 꿈에서라도 그에게 나를 고백하고싶어진다. 라임라이트는 나를 솔직하게 만든다. 예술가는 언제나 자신의 철학을 가져야한다는 단순하지만 너무나도 담백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광대가 되어 미소지으며 얘기한다.


검은 파마머리에 작은 모자이크 타일 한 장 같은 콧수염으로 언제나 방랑자를 연기했던 채플린이 마지막으로 광대를 연기한다. 자신의 예술혼을 모두 불태운 이 영화를 뒤로 그는 미국을 떠나게 되는데 이 영화에는 채플린과 코미디 역사를 함께 했던 영광의 배우 버스터 키튼도 우정출연한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 우열을 가리기보다 키튼은 스턴트 액션이 돋보이는 액션 코미디에 능숙했고 채플린은 슬랩스틱과 캐릭터코미디에 능했는데 내가 채플린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영화에는 카타르시스가 분명하게 나뉘기 때문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모두 존재한다. 사랑과 기쁨의 순간, 추락과 아픔, 고통의 순간부터 다시 희망으로 가는 순간까지. 코미디 배우로써 그가 이룩해낸 영화사의 많은 순간과 의미들은 단순하게 지나쳐보낼 수가 없다. 내 역사에 있어 채플린을 알고 그 이후부터는 나와 그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가 힘들거나 누군가에게 기대고싶을때 또는 희망을 그리고싶을때는 항상 채플린의 영화들을 본다. (주성치 영화도) 


라임라이트 이전에 주목해야하는 것은 그가 쓴 자서전격의 소설인 풋라이트이다. 영화에서는 많이 생략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명작이다.) 소설에는 그보다 더 풍부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채플린은 이제 자신이 퇴장해야할 순간임을 스스로 고백한다. 칼베로는 빛나는 테리의 앞 날을 위해 거리의 악사가 되어 모자 속 한 푼까지도 거부하지 않는 자유영혼으로 돌아갔지만 테리는 그를 진실로 사랑하고 있었음이 후에 드러난다. 발레 첫 공연날 세트 뒤에서 무릎을 꿇고 제발 그녀가 잘 되기를 비는 광대의 모습 그 너머에 고독함과 외로움에 진저리치는 과거의 영광과 지금의 처지를 끔찍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한 예술가가 서 있었다. 칼베로의 대사들은 실제로 그의 당시 상황과 연결되어 (살인광시대의 흥행실패 이후) 참을 수 없는 감정을 이끌어낸다. 인생에 두려움이 없는자가 누가 있겠는가. 누구나 이번 생이 처음이기에 아마추어일 수 밖에 없고 채플린은 이 처음인 삶에 그 모든 감정들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야 두려움은 해소된다고 믿는다.


"Time is the best author."


시간은 언제나 훌륭한 작가이다. 그것은 완벽한 결말을 만든다. 후회와 두려움, 과거의 영광과 고독함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시간은 모든 것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채플린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언제나 어디론가를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무대 뒤 간이 소파에 누워 죽음을 맞는다...이 영화는 볼 때마다 항상 같은 부분에서 눈물이 터지고만다. 늘 알고 있지만 그가 눈을 감는 것이 너무 슬프고 잡초라고 말하는 장면이 너무 서글퍼서 엉엉 울어버리고만다. 그는 내게 너무나도 큰 영감과 감정, 서사들을 알려준 작가이다. 언젠가 꼭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거지꼴로 돌아다니던 남자가 사랑했던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는다. 그리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여자가 빨리 남자를 알아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과 동전을 건내주던 여인이 그의 손을 잡고 당신인가요? 라고 물을땐 눈물을 참을 수 없다. 남자는 수줍은 표정과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다. 이제 나를 볼 수 있나요?라고 묻고 이제 당신을 볼 수 있다며 대답하는 여인을 보며 지나간 시간과 남자의 고난을 떠올리며 눈물이 폭포수처럼...
나는 아무래도 너와 결혼해야하는 것 같다. 채플린이여..다시 태어나라..그리고 내게 와주세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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