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상반기까지 본 영화중에서 올 해 나에게 최고의 영화가 될 토니 에드만.

가깝고도 먼, 익숙하지만 불편한 그런 존재인 가족.

다소 어색한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그린 작품 그 이상의 영화

베를린 거주 이제 막 마흔을 넘긴 젊은 여성 감독인 마렌 아데가 그린 처연하고도 행복한 작품 토니 에드만

모두가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영화학교 졸업작이었던 <나만의 숲>에서는 시골학교에 부임한 여교사 멜라니의 서툰 사회생활을 통해 고독한 그녀가 점점 거짓말의 산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걸 봤던 기억이 있다. 20대였던 멜라니가 30대의 커리어우먼이 되었다면 어떨까.


가족들과 함께하는 자신의 생일파티에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이네스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 또는 그렇게 보이는 사람. 피에로 분장을 하고 방문한 아버지와는 평범한 대화도 어려운 사람. 아버지는 택배배달원에게까지 농담과 짖궃은 장난을 하는 괴짜.


희극, 그것은 때론 지난한 신파보다 더욱 더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아버지와 딸의 어색하고 불편했던 관계를 회복하는 가족 드라마가 아닌 완전하고 행복하게 이별하는 법에 관한 영화다. 빈프리드 (아버지)의 늙은 개가 죽은 뒤에 그는 삶에 행복이 없어보이는 딸을 찾아 루마니아로 가게 된다. 아버지와의 관계마저도 껄끄러운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온 아버지가 마냥 반가울리 없는 이네스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보이지만 그녀는 이마저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감정이란 표현의 대상이 아닌 숨기고 어색해져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중요한 거래처 사장의 부인과의 약속도 어긋나고 아버지에게서 너의 삶은 행복하냐는 질문에도 답을 못 한 이네스는 답답하고 어두운 동굴에서 좀처럼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녀에게 아버지나 사람과의 관계는 그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체면치레처럼 달갑지 않은 일의 연장선일뿐. 아버지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 삶의 흔적을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반면 이네스는 그와는 정반대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걸 택한다.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도 삭막하고 음울한 공기로 가득차있다.


달걀페인팅 파티에서 이네스가 부르는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의 가사는 후반으로 가는 시점에서 적절한 연출이었고 잔다라 휠러가 노래하는 모습은 흡사 절규하는 것 같아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의 삶은 갑작스레 찾아온 토니 에드만으로 인해 혼란스럽게 변하고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줬으면 하는 매일에 자신을 꾹꾹 눌러담아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싶지 않았던 그녀에게 변화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아버지는 그녀가 웃기를 바랐을 것이다. 모든 이의 삶에서 유머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천진난만하고도 아이같은 장난과 배려들이 이제 가족을 떠나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챙기고 돌보며 살아가야할 그녀가 행복하기를, 또한 그녀의 삶에 언제나 웃음이 있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농담은 성공했을까?


누드파티에 불가리아 전통 인형 복장을 하고 나타난 아버지와 기괴하고도 멋진 포옹을 나눈 그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 속으로, 그 치열한 삶 속으로 다시 홀연히 떠난다. 아버지는 이네스의 인생에서 계속 소외당한채로 그녀의 언저리를 겉돌았지만 이 한 번의 포옹으로 빈프리드와 이네스는 완전한 이별을 마무리하게 된다. 빈프리드의 삶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고 영화에는 전반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 말미에 늙은 개 빌리의 죽음으로 시작하여 후반부에는 할머니 (빈프리드의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인 빈프리드 또한 인형탈 속에서 호흡곤란 증상으로 쓰러지게 된다. 빈프리드는 죽음 이후 홀로 남게될 이네스가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녀에게 행복과 삶의 의미를 찾아주고자 루마니아행을 택한 것이다. 자신은 거북이가 되어 떠날 것이고 딸과는 자주 만날 수 없을 것이며 이제 그녀는 싱가포르로 떠날 채비를 앞두고 있다.


썩은 발톱을 치료할 여유를 제거하고 스스로 발톱을 뽑는 이네스의 인생에서 돈이나 명예, 인생의 즐거움이라는건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 또는 가치가 아니었다. 그런 그녀에게 시종일관 장난과 농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자신의 인생을 흔드려고하는 아버지가 불만이었지만 greatest love of all 이후 이네스의 내면에는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유머는 휘발성이 있지만 웃음은 잔향을 남긴다. 그녀가 오롯이 자신을 사랑하며 인생의 즐거움과 주변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길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할머니의 장례식에 온 이네스는 할머니가 썼던 모자를 쓰고 아버지가 쓰던 의치를 쓰고 미소지어 보인다. 순간을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것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 뿐이다. 빈프리드는 이네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순간의 기억으로 잡아두고자 카메라를 찾으러 가고 그녀는 우두커니 남아 모자를 벗고 의치를 떼어낸다. 이제 그녀의 삶에서 할머니나 아버지의 늙은 개 빌리는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아마도 머지않아 아버지 빈프리드도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순간을 잡을 수 없다는 의미는 지속되는 삶 속에서 이별은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죽음의 그림자가 귀결되는 지점은 결국 이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코미디의 힘을 빌어 관계의 개선을 유도하고 이네스의 '혼자'인 삶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고 삶에 여유라는 수분을 보충해주고 유머라는 기름을 칠하는 것을 잊지말라고 얘기하는듯 했다. 빈프리드는 거북이가 되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에게나 그저 거북이인 존재로 말이다.





★★★★★★★★★★









수상 시즌을 마치고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인디영화가 있다.








페터슨


짐 자무쉬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몇몇의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연기톤으로 자유로운 행동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때로는 위선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아담 드라이버가 묘하게 매력적인 이야기 페터슨에 주연으로 등장한다. 짐 자무쉬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느리고 시적이며 사랑스럽고 신사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한 순간을 연기한다. 아담 드라이버가 맡은 페터슨은 버스 기사다.  시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낭만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짐 자무쉬의 이번 신작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리미츠 오브 컨트롤' 등으로 아리송해져 있는 팬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인간의 삶은 반복의 연속이다. 이 반복되는 연속의 삶 속에서 시와 일상의 아름다움을 끄집어낸 짐 자무쉬의 멋진 각본과 아담 드라이버의 차분한 연기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이 분명하다. 


이란 출신의 골쉬프테 파라하니라는 다소 생소한 여배우가 등장하는데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그 여인이다. '에덴', '귀향', '어떤 여인의 고백' 등에서 연기한 배우로 제 3세계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얼굴일 것이다. 곧 캐리비안의 해적에도 얼굴을 비춘다고 하니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









라이언


가스 데이비스



데브 파텔, 니콜 키드먼



호주 출신 가스 데이비스의 첫 장편 데뷔작. 다큐멘터리, 단편 등의 경력이 있으나 장편 극영화는 처음.

국내에서는 2월 1일에 개봉하여 꽤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1,200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졌고 현재 그 4배가 넘는 5천만달러의 수익을 내고 있으며 여전히 극장에서 우릴 반기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라이언은 1986년 5살의 나이로 형제와 이별하게 된 사루의 이야기를 다룬다. 강한 이야기의 힘과 과잉이 없는 연출로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는데 첫 도전치고는 대단한 업적을 이룬 셈이다. 실화를 각색하면서 도를 지나치지 않고 간결하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담아내고 풍부한 감정을 위해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이다. 아역배우의 연기가 상당한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선 아직도 절찬상영중인데 국내에서는 이미 내린 상태라 수도권에서 볼 수 있을듯하다.










토니 에드만


마렌 아데



산드라 휠러,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가족에 관한 유머러스한 통찰력이 담긴 작품이다.

가족, 이 지긋지긋하고도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무거움에 관하여 이보다 더 재미있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독일 태생의 마레 아데 감독은 데뷔작 '나만의 숲'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드라마 부문을 수상하며 데뷔한 젊은 시네아스트이다. 마데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동감으로 흘러 넘친다. 나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모두에게 있을법한 드라마를 자신만의 무기삼아 예리하게 재단해내는 감독의 재능은 뛰어나다는데 이견이 없다.

이번 영화는 가족의 이야기로 공개된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로튼 토마토 지수 92%를 기록하며 극장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괴짜 아버지와 신여성인 딸과의 세대차이, 생각의 차이를 유쾌하게 때로는 씁쓸하게 가슴을 적셔주는 명작.

아직 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자신있게 권하고싶다.







인디와이어에서 네 번째로 꼽은 영화가 스플릿. 그러니까 국내 제목으로 23 아이덴티티인데 영화를 보았으나 추천하기 꺼려져 많은 내용을 담지는 않겠으나 본 영화는 9백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져 현재 1억 3천만달러의 기록을 넘겼고 아직도 영화관에서 상영중이다. 

제작비 대비 수익률을 생각하면 식스센스 다음으로 샤말란 영화 중 가장 흥한 영화가 아닐까싶다. (식스센스 제작비 4천만달러 / 흥행수익 2억 9천만달러) 비지트가 잘 빠진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닥 흥행을 못했는데 그보다 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이 영화가 생각보다 미국에서 너무 흥하는 바람에...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커보인다.

엔딩에서 이미 다음편이 나올 것처럼 많은 암시가 있었으므로....


언브레이커블이란 영화를 매우 좋아했던 나로써는 이 영화를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웠다. 왜 이렇게 흥한지도 잘 모르겠고...

맥어보이 + 샤말란 조합이기때문에 매우 기대를 많이 했으나 너무 세기말스러워서 이건 뭐...

어쨌든 샤말란이 긴 터널을 빠져나와 간만에 흥한 영화가 되었으니 그것은 축하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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