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내 자서전에 쓸 내용이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한 것은 부모님이나 기타 다른 것들의 영향도 있었지만 정체성이나 가치관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사춘기때 만난 이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4분의 1 만큼도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펠리니는 지나간 영화를 보는 즐거움에 대해 알려준 최초의 사람이다. 마술같은 신비로운 힘. 전혀 다른 세상에 빨려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준 내 인생 최초의 마약, 그의 영화를 보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찰리 채플린은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두 번째 아버지라고 부르고싶다. 그의 영화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키드와 시티 라이트, 그리고 라임 라이트다. 키드는 무르나우의 마지막 웃음만큼이나 페이소스를 극대화 시킨 희극이었다. 시티 라이트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나누고 싶은 사람과 함께 보고싶은 영화이고 라임 라이트는 죽기 직전에 보고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찰리 채플린은 내 인생의 전부와 함께 하고 모든 것에 영향을 준 사람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전문적(?)이고 본격적(?)으로 영화에 입문할 때 가장 도움이 된 스승이었는데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함뿐만 아니라 영화의 오락적인 재미까지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어떤 작품을 그리게 된다 하더라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향권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영화는 반복해서 보고 있을뿐만 아니라 내가 닮고싶은 부분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존 휴스턴은 일반적으로 봤을때 루저인 나에게 도움이 되어준 사람이다.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사회적 경계 바깥의 사람들, 일반론적으로 봤을때 평균 이하의 사람들,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들, 욕망에 충실하고 정직한 사람들. 그러나 마음이 약하고 순수한 사람들. 기인들은 내가 꼽는 그의 베스트다. 이런 영화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어떤 교과서보다 뚜렷한 철학을 가르쳐주는데 그보다 더 고마울수가 없었다. 큐브릭...그는 나에게 테크닉적인데 있어서 장인 정신을 가르쳐준 사람. 평소엔 덜렁대는것 투성이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함과 꼼꼼함을 추구하는 내게 있어선 가장 큰 역할 모델이다. 1mm까지 신경 써서 촬영하는 완벽주의자. 그의 모습은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형태의 일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이 인간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일수있다면 좋으련만..죽어있는 시체의 뼈라도 잘게 부수어 몸속에 넣고싶을 정도로 존경하는 사람..
그리고 주성치. 이 남자는 나에게 작은 멘토다. 사는게 거의 고난의 연속이니까..가끔 힘들때 기대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성치. 그의 영화를 보는것 자체가 인생의 활력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희극지왕 그리고 서유기 시리즈.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스트레스같은건 잊게 된다. 사람을 대할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두를 대할땐 진심으로 거짓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를 알려준 것도 주성치의 영화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법, 애정을 쏟는 법, 진심으로 웃을수 있는 법을 가르쳐준것도 그의 영화다. 마지막으로 빠졸리니..무한 애정의 대상. 죽음이 한스러운만큼 죽을때까지 사랑해주려한다. 내 평생의 연인을 삶고싶을 정도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 그의 영화가 정식 개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고 투쟁적이며 영리하고 착하고 드넓은 사람. 이런 남자와 같은 시대를 살지 못했다는점이 아쉽고 분통하다. 멀리 찾을것도 없이 내가 사회적으로 배워야할 모든 것은 그의 영화 속에 있었다. 매와 참새를 처음 보고 얼마나 반가워했었는지! 너를 이제야 만났구나! 아 살아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그렇다면 이탈리아로 날아갔을텐데..! 분하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러워 식도로 음식물이 넘어올 것만 같다고 생각했었지. 나에겐 가장 어렵고 풀어야할 숙제이고 넘어야할 산같고 관에 같이 들어가고싶은 존재인 빠졸리니. 언젠가는 나란히 같은 곳에 서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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