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나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맙게도 연말에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연락이었다.
나는 서울에있는 존재들을 애써 잊고 살려고 노력하는데 나의 친절하고 상냥한 친구들은 나에게 힘을내라는 고마운 메세지와 함께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준다. 11월 초부터 인터넷이 끊겨 약 한 달간 인터넷사용이 안되서 가족과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같은 동네에서 어릴때부터 함께 자란 오래된 친구에게 집에 전화 좀 해서 사정이 이렇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연락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혹여라도 연락이 안되서 근심하실까 걱정이 되어 부탁한 것이었다.
물론 인간으로서 여러가지 단점이 있고 지금은 아직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치부를 가졌다한들 긴 세월을 근면성실하게 일한 아버지..너무나 많이 미워했고, 증오했으며..
여기에 와서조차도 쉽사리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는데..
올 해 3월, 가족이 너무 보고싶어서 오른 비행기...한 밤중에 곤히 자던 아버지를 깨워 막내딸 왔다며 흔드는데 그 체중이 줄고 줄어 이제는 뼈밖에 남지 않은 가냘프고 부러질 것 같은 몸과 노화와 건강악화로 검게 변한 얼굴....
새삼 나의 아버지가 이렇게 초라했었나..싶어 의아했다.
내가 어릴 적에 나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호랑이같은 분이셨다.
그 뜻에 거역할 수 없었고 차가웠으며 독재자같았던 나의 아버지가 너무나도 초라한 몸을 하고 눈을 비비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를 거듭 묻는데 차마 눈을 마주볼 수가 없어 힘껏 껴안아버렸다. 마른 나뭇가지같은 아버지를 껴안고도 한동안 몸을 떼지 못했다.
몇 일 전 전화가 연결이 되어 일이 끝나고 12시를 넘겨 혹시나해 집에 전화를 해보니 엄마가 받았다.
친구의 전언을 듣고 집에 전화가 올까봐 다같이 기다리고 계셨나보다.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한 엄마 목소리가 잠겨있어 감기걸렸냐 물으니 추운데 있으니 감기가 들 수 밖에 없다며 타박한다...아버지를 바꿔주시는데, 내가 말하기도전에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아버지. 항상 같은 레퍼토리다. "밥은 반찬이랑 잘 먹고 있느냐, 밤길을 조심해야한다. 말조심하고..공부 열심히해라.."
나는 내가 사랑받지 못할 때면 아빠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아빠때문에 내가 이렇게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불구가 된 거라고 원망했었다.
우리의 비뚫어진 관계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해하고있는걸지도 몰랐다. 전화기 너머로 아버지가 겨울방학을 해도 서울에 올 생각을 말라는 소리를 하신다.
"서운하니?" 그 말이 왜 그리도 다정하게 들리는지 눈물이 왈칵 나버렸다.
여기서 아무리 서러운 일을 당하고 비참한 일을 겪어도 나에겐 돌아갈 집이 있고, 가족이 있으니..부모님, 언니, 강아지 얼굴을 저물어가는 석양에 예쁜 구름 위로 하나 둘씩 떠올리며 괜찮아 괜찮아..를 가슴에 새기며 참고 또 참았다.
엄마는 전화를 하면 그런 일은 애초부터 각오하고 간 것이 아니었느냐. 니가 다 감당해야할 일이다. 며 애써 많은 위로를 해주시지 않는다. 물론 해외에 나와있는 다른 친구들도 모두 너무나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열심히 돈 벌고 학업에 매진하는 것을 알지만...나도..죽기살기로 노력했다. 부모님한테 부끄럽고싶지 않았고..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인간이 되고싶지 않았다. 지난 세월을 똥물에 흘려 보냈으니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지고싶지 않고 무시당하고싶지 않아서 그 서러움을 삼키고 삼키고 또 삼켜서 드럽고 치사한 일도 웃어 넘기며 피곤한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서슬퍼런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아껴가며 번 돈으로 발품팔아 이사도 끝내고 남은 돈은 입학하고 약간의 생활비 명목으로 남겨둔 돈이었지만, 부모님이 너무 보고싶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비행기표를 사고말았다. 부모님을 놀래켜 줄 명목이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차가웠다.
생활비가 모자라지만 보내줄 수 없는 부모님도 속이 많이 상하시니까 어떻게든 돈을 아끼라는 마음이셨겠지만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난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생활하면 될 일이었고 없으면 먹지 않고 쓰지 않으면 될 일이었는데...어떤 부모가 자식을 고생시키고싶어하겠는가...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이상, 백 배..아니 만 배..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그 사랑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나를 사랑하신다. 이미 여기에 나를 보내준 것 자체가 당신들께서 베풀어준 크나큰 축복임에도 불구하고....아버지는 "서운하니..?"라는 다정한 말 뒤로 공부를 끝마칠때까진 돌아올 생각 말아라..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도 항상 마찬가지다. 전화도 자주 하지 않지만, 가끔 전화할때면 "그냥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아라.." 부모님과 통화나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약해짐을 알기에 가급적이면 연락을 하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 연락을 자주하지 않으신다. 과거에 묶여있으면 앞으로 나가기가 어렵다..안주하면 주저앉고싶다. 속박되면 나갈 구멍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도망나오는 길을 택했다.
책임은 나의 몫이고 뒷수습도 내가 한다. 그 무게와 깊이가 상상을 초월한다고해도 감당하기로 했다. 그러기로 마음먹었다.
학교도 잘 안나가고 등교거부를 하던 내가, 부모님 속을 할퀴다 못 해 까맣게 재로 만들고 그 재마저도 밟고 뭉갰던 내가 이제 사람이 되려나보다. 삶에 물이 말라 부서지고 그 부서진 부스러기들이 내 몸을 할퀴고 상처낼때는 정말로 어떤 방법도 없어 부서진 틈 사이로 내 몸을 숨기고 조각내어 다시 부스러지고싶을 뿐이다...그럴때마다 분명한 이유와 목적으로부터 오는 근성과 오기들이 나를 지탱하게 해준다...어른이 된다는건 그냥 세월을 넘기고 나이를 먹는게 아닌 스스로 나를 감당할 수 있게되는 책임감을 습득하고나서부터가 아닌가한다. 잠이 부족해 피곤할뿐이지 힘들지 않다.
말했지 않는가..내 인생의 리즈시절이라고..나는 불쌍하지도 않고 동정받아야 마땅할 입장에 처해있지도 않으니 힘내란 소린 필요없다. 니나 잘해라^^^^ 모든 것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고 내 스스로 자처한 수렁이다.
나는 이룰 것이고 해낼 것이다. 사실 이런 대역죄인 고백문도 성공한 뒤에 써야 이치에 맞지만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리고 잘못된 길이 아닌 각자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 나의 친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콧물을 삼키며 쓴다. 방황하는 것도 좋고, 반성하는 것도 좋지만..우리 청춘의 얼룩은 지우지 말자..땀나는 얼굴로 콧물흘리며 주절대는 것보다 더 창피한 것은 쿨한척 상황을 넘기고 침묵해버리는 것이다.
떼를 써도 좋고 하소연을 해도 좋으니...우리 청춘의 얼룩을 서사시로 주렁주렁 열매를 맺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