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가 나 국민학교때 처음 차를 사셔서 기쁜마음에 매일매일 타지도 않으면서 세차만 열심히 하셨는데 어느날 그 차 밑으로 코랑 발만 까만 누렁이 똥개 새끼 한마리가 기어들어와 아부지를 따라 우리 식당까지 와버린거다. 우리 가족은 다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땐 우리집도 반지하에 살았을때고 형편이 그리 좋지않아 강아지를 돌려보냈는데 글쎄 그 강아지가 자꾸 우리 식당 앞에서 떠나질 않는거다. 떠돌이 개였을텐데..밤까지 그러구앉아있어 우리 아부지가 어쩔 수 없어 잘가라~하고 집에 오셨는데 다음날 가게 나가보니 그 자리에 고대로 있더란다. 나두 그렇구 언니두 그렇구..강아지를 처음 만져봐 신기하다고 이리 안고 저리 얼싸안고 우리 요거 키우자고 생떼를 쓰고 졸라서 결국 가게에다 강아지를 묶어놓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도 자꾸 강아지가 아른아른거려 보고싶다..보고싶다..몇 일을 가게에다 뒀지만 나는 집으로 데려오고싶어 아버지를 조르고 사정을 하고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불고..어렸을적부터 워낙에 엄격하신 아버지이기에 우리도 왠만한 일로 떼를 써 본 적이 없는데 이것만큼은..물러설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는 몇 일을 투쟁을 하듯이 아버지에 맞섰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아버지는 우리 얘길 들어주셨다.
그렇게 우리집에 처음 오게된 강아지의 이름은 '복돌이'였다. 가게방에서 살다가 처음 이사간 방 두개짜리 반지하. 부엌도 조그만 싱크대 하나뿐이고 화장실에 변기 하나 들어있을 정도로 좁아터진 집이었지만 우리 가족 넷이 있을수 있는 행복한 집이었다. 복돌이를 데려와 집 앞에 있는 통로에 집을 하나 만들어주고 그렇게 겨울도 함께 보냈다.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고 눈이 오면 같이 눈밭을 뛰어다니고 가끔 복돌이가 외출하고 돌아올때면 사납게 울어댔다. 우리 강아지가 집에 오질 않는다고..근데도 참 신기한건 꼭 우리집으로 돌아왔었다. 아무리 외출을 많이 해도 꼭 마지막엔 집으로 돌아와 우리집 현관문 앞 집에서 자고 있었다. 봄이었던걸루 기억하는데 우리 주인집 딸래미가 우리랑 엄청난 원수지간이었는데 그 애는 우리가 현관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렸다가 이층에서 우리 머리위로 침을 뱉곤했었다. 우리가 여름이 되면 다라에다 물을 받아놓고 그 사람 한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서 물장구 치고 놀고있으면 또 머리 위로 침을 뱉고그랬다. 고 나쁜 기지배가 우리 강아지를 시샘해 지그 엄마에게 일러받쳐 아버지가 혼을 나는 일이 빈번해졌다. 강아지도 점점 크기가 커져갔고..남의 집에서 신세지고 사는 형편에 강아지를 키운다는건 크나큰 사치였다. 결국 아버지는 강원도에 있는 외할아버지댁에 복돌이를 보낼 것을 결정하셨고 나와 언니는 안된다고 나는 그 어린나이에 무슨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죽이라며 울며불며 떼를 썼다. 아마도 안된다는걸 마음속으로 알고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헤어지고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 작은 짐승과 불과 몇 개월의 시간동안 너무나도 큰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시골에 보낸다고 박스에 강아지를 넣고 나는 거길 따라가겠다고 차 뒷자석에 앉아 복돌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놈은 지가 멀리 가는줄도 모르고 검고 깊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굴러가는 차가 신기하다고 왈왈 짖었다. 그것이 나의 첫번째 만남과 헤어짐이었을 것이다. 복돌이를 만나고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고 외출하고 다녀오면 어딘가에서 천원짜리를 물어봐 이놈이 진짜로 복을 갖다주네..하며 좋아했던 우리엄마. 나랑 언니는 복돌이를 보내고 거의 일주일간을 먹지 않고 울며 보냈다. 생각나고 그리워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그 상처는 신기하게 아물었다. 얼마후 우리 아버지는 분당에 새로 생긴 신도시(당시 노태우가 만든)에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우린 그곳으로 이사가게되었다. 난생 처음 누워보는 깨끗하고 넓은집. 먹을것 못 먹고 하고싶은것 참아 겨우 마련한 내 집.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아주 어릴때부터 집을 사야된다는 생각밖에 안하셨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슨..우리가 갓난쟁이일때부터 약 9번 정도 이사를 다녔고 그 기간동안 많은 소중한 물건들을 분실했고 추억을 담을 시간도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간속에 우리 부모님은 정착해서 살 집을 그토록 원하셨던 것이다. 남의 집 밑에 살면서 설움을 당하느니..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집을 그렇게 갖고싶으셨단다. 우리는 이사 첫날. 다같이 거실에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내방도 처음 생겼고 깨끗하고 공기가 맑은 곳. 그곳에서 있었던 기억들과 추억들은 지금도 희미하지만 아주 행복한채로 남아있다. 결국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우린 다시 집을 팔고 서울로 올라와 남의집 살이를 했다. 약 1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그때도 우리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매일 전쟁을 벌이셨겠지..
아버지는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넓고 정원이 있는 집에서 강아지 여러마리 키우고싶으시다고..소원을 들어드리고싶은데 아직 그럴 능력이 못 되 죄송하다..그리고 이상하게 그 이야기를 하실때마다 시골로 보내져 3년뒤쯤에 새끼를 낳고 차에 치어 죽은 복돌이가 생각난다. 우리 할아버지를 마중나갔다가 차에 치었다고 한다. 외가가 워낙 인적이 드믄데다 차들이 속도를 잘 안지키기도하고..외출 좋아하는 복돌이라 아마도 마음이 급해 마중나갔겠지..
그 애는 우리 인생에 잠깐 들어왔다가 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래두 새끼를 낳고 가서 걘 우리가 중학교때까지 살았다. 외삼촌이 개고기 장수에게 팔아넘기기전까지..난 그뒤로 외삼촌과 말도 잘 섞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고 사연이 넘쳐나지만..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만큼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이야기는 없는것 같다. 사람들은 영원이란 말을 매우 자주 쓴다. 영원히 사랑해..영원히 너의 곁에 있을거야. 영원히 함께하자...
시작이 있으면 언젠가 끝도 있다. 각자의 자리를 찾고 달리다보면 어느샌가 우리는 영원이란 사실은 신기루에 불과한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된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이 갖는 무게나 의미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치 않는다. 어쩌면 안녕이나 잘가라는 말보다도 실체가 없을지도 모른다..그래서 난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려고한다. 언젠가 우리는 타의든 자의든 만유인력의법칙이든 무엇이든간에 헤어지게 될 것이고, 더이상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게될 것이다. 못 믿겠지만 그런 날은 반드시 오게된다. 그래서 먼 미래나 영원을 약속하기보다 현재를 중요시하고싶다. 만남의 소중함을 알기에 헤어짐에도 예의를 갖추고싶다. 나이가 들면 점점 사람들과 헤어지는데 무뎌진다고 한다. 근데 나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된다. 만남이 소중한만큼 헤어짐 또한 너무나도 아프다..최대한 스스로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헤어짐은 나에게 너무 큰 공허함을 준다. 단 하루를 알았어도 잔정이 많은 나에겐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데..하루하루를 감내하고 견디면 또 새로운 아픔들이 밀려오고 세월의 무게와 책임감 또한 커진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들에게서 달아나고싶어 스스로 무뎌짐을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적 강아지를 보내고 일주일을 서럽게 울었던 꼬맹이 시절과 똑같이 계산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사랑하고 아낌없이 나눠주고 온 힘을 다해 추억을 만들 것을..그런 내가 변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그냥...오늘은 마음이 참 쓸쓸하다.
안녕!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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