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에게 왕따가 왜 발생하는가? 라고 질문을 하면 100명 중 60-70% 정도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비율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폭력적인 미디어 환경에 노출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이 대답에 대해 터무니없다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어른들은 알고있는지?
실제로 폭력적인 미디어에 노출되어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청소년 관련 현장에 계신 분들은 (선생님이나 센터장같은 분들..) 더 그들과 가까이 있으니 본질적인 이유나 동기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으실거라 믿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보기에 이 아이들이 하는 행동은 '분노'다. 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죄없는) 목적이 아닌 표적을 만들어 아이들을 학대하고 그것이 학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몇 년 전인지 기억이 자세히 안나지만...중학생 아이들 여러명이 뜨겁게 열이 오른 고데기로 같은반 아이를 고문하고 학대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그 후 얼마 안되어 비슷한 나이대의 중학생 서너명이 친구를 죽이고 그 아이를 토막내 한강에 버리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그것이 발각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또 이것과 연결되는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친엄마를 죽이고 장롱에 유기해 방문을 실리콘으로 동여맨 후 몇 달간 방치한 아이가 있었다. 내 기억에 문제가 있어 이 사건이 조금은 과장되거나 마이너스한 것이 있을지 몰라도,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상대 학생을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거나, 죽여서 토막낸 것은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야했다. 청소년은 나에게 있어 풀어야할 숙제이기 이전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은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고민해야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운다는데 그럼 이들 주변에 그런 어른들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라면 이들은 폭력적인 영화나 만화의 영향으로 그것을 그대로 따라했던 것일까? 내가 이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를 얻은 곳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았다. 일본도피 후 돌아와 서울 집에 머물고 있는 지금,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우리 바로 윗집에 아버지없이 엄마가 홀로 여아1, 남아1을 키우며 살고 있다. 이 엄마의 성격이 보통이 아닌지라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화장실 문을 닫아라. 텔레비젼을 그만 보고 잠자리에 들어라같은 말도 무조건 소리를 질러야했다. 이 집은 하루에 10번 이상의 큰소리가 나고 엄마는 히스테리를 부리다 못해 성질을 못이겨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문을 부서져라 닫고 여는등. 아이들에게 신체적 폭행을 가하기도 하는것 같았다. 나는 여러번 윗층으로 올라가 너무 시끄러우니 조용히해줄 것을 요구했고 문 좀 열어 아이들을 보고싶다. 왜 이렇게 아이들을 잡느냐는 오지랖을 부리기도 했다. 이게 무례한 행동인줄 이성은 알고있었지만 아이들이 받을 감정적인 테러가 상상 이상이었기에 어떻게든 잠깐이라도 행동을 막고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문을 열거나 대화할 것을 거부했고 남의 집 일에 간섭하지 마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나올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신체적 폭행이라도 당한 사실이 있다면 센터에 신고라도 할 수 있었지만 엄마는 신체적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아이들을 옭아매고 영혼을 죽이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면, 여아는 누나이고 남아는 동생이었는데 엄마가 일때문에 집을 비운 사이 남동생이 누나에게 엄마가 본인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이의 눈은 보이는 행동이나 들리는 말을 1차원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뇌에 저장하고 사고하는 단순한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고리는 바로 부모에 의해 형성된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만나는 인간은 부모이고 이 부모와의 관계는 아이의 기질이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이 되어준다. 이 대목에서 아이는 평생의 성격을 만들어나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냐하는건 중학생 정도의 레벨만 되어도 알 수 있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행동을 보고 그것을 누나에게로 연결시켰으니 누나는 엄마의 분노를 1차적으로 받아내고 2차적으로 남동생의 분노를 받아주는 곳이 되기 때문에 이 풀리지 않은 누나의 분노는 제 3의 피해자를 낼 수도 있다.
위에 열거한 중학생들의 경우 가정환경이나 부모와의 관계까지 조사할 수 없었기에 확실한 원인을 알아낼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인간의 사고나 유형들을 통계내고 숫자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기에 확실히 말할순 없지만 내가 가진 정보들을 종합해 생각해보자면 아이들은 학습에 의해 후천성 성격장애를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심리학적으로 접근해야하는 아주 민감한 문제이기때문에 보통 인간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결단내릴지도 모른다. 폭력은 폭려을 낳고 풀지 못한 분노는 결국 피해자를 만들고야 마는데....이 중요한 접점에 있는것은 바로 이 아이들의 부모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 아이들의 부모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자식을 잘못 가르쳐서? ... 이에 대한 대답은 나도 할 수가 없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티비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만 봐도 쉽게 보인다. 아이들에게 <야!>가 아닌 이름을 부르고 <귀찮아>보다 같이 놀아주거나 사랑해라는 말을 많이 할 경우 아이는 분명 달라진다. 화내거나 훈계하기전에 타이르거나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설명했을 경우 아이들은 분명 이해한다. 우리 어른과 다르게 아이들의 뇌는 스폰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한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하고 행동을 보고도 따라하기 때문에 학교라는 사회에 나가기 전,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형성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저 아이들을 싸이코패스라고 규정하고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흉물스러운 인간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무덤으로 집어넣는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밝혀진 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된 이유는 단순했다. 학업스트레스로 부모를 죽인 아이를 제외하고 <내 욕을 하고 다녀서..> 혹은 <나에 대한 기분나쁜 말을 하거나 그런 행동을 했기때문에...>. 가정이나 학교에서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더라면..상황을 분노로 다스려서 나온 결과에 대한 비극적인 사례를 인지시키고 화를 조절하여 마음을 가라앉히는 법을 가르쳐주었더라면....아쉬운 마음에 자꾸 피해를 당했을 아이가 생각난다. 나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인데 기사를 읽고 아이들을 떠올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내 친동생도 아니고 조카도 아닌데...
사람의 마음은 변수가 많고 다치기 쉬운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작은 트라우마에도 공격성향을 띄우기 다반사다. 가령 뾰족한 것에 눈을 찔릴뻔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다음번에 그와 비슷한 것만 봐도 포악한 성질을 드러내는 동물적인 본능이 학습된다. 이에 대해 부모와 학교, 주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면.. 아이들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본다면..고민을 나누면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하더라도 약간의 해소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고한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과 피해를 받은 아이들은 모두 같은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내용이 단순 폭행이나 금품갈취 정도가 아닌, 토막살해. 성매매 포주. 성고문 등..나날이 악마적 성격을 띄고 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태어날때부터 싸이코패스여서가 아니라..어떤 충동장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겪을 피해나 고통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이런 행태는 학습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감정일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시절 개구리를 뜯어 죽이거나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버리는 행위와 같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감정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다면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아이들이 더 고통스러워지겠지. 나는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군대 내부 폭행치사 사건에 대해서 통탄을 금치 못했다. 처음에는 경악했지만, 그 아이에게 가해진 폭력을 재현하는 사진을 보자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이미 이 세상을 떠나버린 그 애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내 친동생이었다면, 내 큰조카였다면...만약 나와 피를 나눈 형제였다해도 그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구타를 당하는 그 한 달 이상의 시간동안 단 한 명의 인간도 도움의 손길을 나눠주지 않았을까? 익명으로 신고라도 해줬다면...부모에게라도 알려줬다면...그 애가 이렇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은 없었겠지. 안보려고 했지만 봐야한다는 의무감에 구타로 멍이 든 몸을 봤는데 그 때 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나도 가해자들에게 이를 갈며 내 분노가 그들에게 칼이 되어 닿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머니의 심정을 어떠할까...
이 가해자들읃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구타의 내용과 폭언한 내용들을 보고 있자니..머리가 어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진실에 대해 알게된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할지...최근 슬픈 사건으로 단식하고 있는 부모님들까지 떠올라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방향을 잃고 정신이 멍해졌다. 이 세상엔 왜 이리 억울한 일이 많을까. 이 억울함을 누구에게 호소해야하고 누구에게 풀어달라고 해야할까. 이 응어리진 분노는 또 다른 이를 아프게 할 것이다. 저 가해자들을 모두 살인죄를 적용시켜 사형을 시키면 이 억울함이 해소가 될까?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일까? 여기에 또 최근에 본 <논픽션 다이어리>의 그들까지 겹쳐 내 머릿속은......
모든 것을 소화할 자신이 없다. 내가 다 짊어져야할 짐은 아니지만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동생도 아닌데, 내 가족같고 친구같고 남동생같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좀 더 빨리 배웠다면....
폐쇄적인 군대 내부라서 이런 일이 일어났던걸까? 이 일에 대한 가해자는 그 애들뿐만이 아니라 이 사실을 묵과한 많은 사람들도 다수의 가해자이며 공범이다. 이 악습을 철폐하기 위해선 군대를 없애거나 형식적인 인터뷰를 하는게 최선이 아니라 의식의 개선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의식의 개선 이전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심리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람에게 있어서 정서적 교감은 매우 중요한것인데 이것이 폭력에 결부되어 한 명을 왕따시키고 폭행하여 사망으로 이르게 하는 것은...결국 분노를 조절하는 행위, 말을 내뱉거나 행동을 하기 이전에 한 번 생각해보는 것, 대화로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것 등의 '인간적인 노력'이 학습되지 않은 것이 큰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대화로 상대방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교류한다. 그 많은 또래의 아이들이 서로 많이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건 너무 안일한 생각일까. 군대에 가보지 못한 여자라는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할때 많은 제약이 따른다. 나는 그 곳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건 몇 편의 사실적인 영화와 경험해 본 이들의 이야기에 따른 가상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아이들이 지치고 있다.
과열된 학업 스트레스와 지나친 경쟁을 주도하는 어른, 차별적 대우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빈부격차. 청소년기까지 형성되지 못하고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자아. 정체성에 대한 혼란. 부족한 대화. 외로움. 사회에서 형성된 외모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 성적지상주의. 학벌이나 지연, 인맥으로 이뤄지는 부조리한 사회. 등등등....아이들을 어른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하는 요소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많은 부조리를 만들어내고 유물로 남긴 것은 어른들이며 그것을 물려받아 또 다른 박탈감을 후세에 남겨가는 것은 또한 우리들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나 한 명이 바뀐다고 이 세상 전부가 하루만에 바뀌진 않겠지만.....누군가는...누군가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나, 혹은 당신..우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된 아이들의 명복을 빌고....또한 가해자로써, 폭력을 휘두른 아이들이 죄값을 받기 이전에 무엇이 잘못된 행동인지 진심으로 깨닫기를 바라고..피해 아이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죄책감의 감옥에서 시달리기를 바란다. 그 감옥은 끝이 없는 고통스러운 감옥이 되기를....
우리 어른들은 이런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살기 바쁜건 알겠지만...지금 40,50대는 20,30대가 새로운 세상을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지지대가 되어주고 이끌어주는 리더가 되어야한다. 그리고 우리 20,30대는 10대 아이들이 성장의 문턱에서 좌절하거나, 그것이 낙오가 아닌 다음 레벨업을 위한 긍정적인 실패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한다. 우린 나이는 다르지만 다 친구라고 생각한다. 4,50대는 2,30대였던 적이 있었고 2,30대는 10대였던 적이 있었다. 모두 지나온 과정이었으면서 왜 처음부터 10대나 2,30대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를 지껄이는지...
아프지 않아도 된다. 굴러다니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게 10대고 아무런 일이 없어도 두근거림으로 가득차있는 것이 20대다. 모든 사람이 소통을 위한 잠깐의 고통쯤은 예방주사같은 것처럼 넘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눈물이 원래 많은 체질인데 요샌 너무 슬픈 뉴스가 많다.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고 도화지를 내려다 보고 있으면 그 종이 위로 아이들 얼굴이 어른어른하고, 고통속에 죽어갔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롭다. 내가 너희들을 도왔어야했는데..왜 알지 못했는지...많은 아이들이 지금도 고통당하고 있을텐데 이렇게 나는 마음 편하게 이곳에 앉아있는것이 죄를 짓고 있는것 같아 마음에 뿔이 돋아난다. 그렇다고 내가 식음을 전폐하고 생업을 포기하고 광화문 네거리로 달려나가지는 않지만....너흴 한번도 만나지 못한 내가 너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렇게 슬퍼하고 고통속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것 정도는 알아줬음 좋겠다. 얘들아 다음 세상에서는 우리 꼭 만나자. 내가 너희들의 날개가 예쁘게 돋아나도록 꼭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