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안이라는 미주 한인 감독.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존 카사베츠 어워드 수상..

흥미돋는 수상이력이 아닐 수 없다. 시놉시스만 읽었을때는 퀴어영화라는 뼈대를 기본으로 한 청년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 등을 주제로 삼은 영화일거라고 생각했으나. 영화는 좀 더 가족 이야기에 가까웠다. 어두운 영상과 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 하는 주인공 데이빗을 보면 너무 우울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할수도 있지만 훨씬- 그보다 훨씬- 그 어두움과는 완전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감독도 궁금해서 시네마톡 행사에 참여했는데 뜻깊은 시간이었다.)


데이빗은 90년대에 이민을 택해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주 세대의 자녀인 것을 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소년.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자신의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소년. 별다른 특기나 장래희망은 없고 SAT 점수도 낮은 저소득 계층의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다. 데이빗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이 아닌 부모님의 식당을 돕는 것을 택했지만 식당의 소득이 점점 떨어지면서 문을 닫게되고 이 결정은 데이빗과 가족 모두에게 큰 전환점을 주는 선택이 된다.

데이빗의 부모님은 90년대 중후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imf위기를 맞은 이후 어수선했던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을 것이다. 연극배우로 오랜 시간 연기해 온 조연호 배우가 맡은 아버지 역할은 전형적인 하층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력했지만 노력한만큼 보상받을 수 있던 시기는 이미 과거에 두고왔다는걸 아버지 스스로도 알았을 것이고 그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숫자의 부모들이 그 비대한 책임감에 눌리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데이빗역을 맡은 조 서의 연기도 기립박수를 보내고싶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부모님역을 연기하신 두 배우에게도 참 측은감이 들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셨다.

데이빗의 가정이 흔들리고 있는 지점에 그의 개인사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들이닥친다. 신은 고민할 시간을 길게 주시지않는다고나 할까..식당이 문을 닫고 어려운 재정상황에서도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자 비싼 학원에 보내지만 데이빗은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성적도 좋지 않다. 훗날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고 검은 안개로 뒤덮인 학원 책상 너무 바깥 세상으로 그는 나가고싶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도 알 수 없는 와중에 그에게는 정체성 혼란이라는 문제까지 찾아온다.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착한다싶을 정도로 몸을 가꾸고 매일 런닝을 하는 그가 한국식 스파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안으로 잠겨있던 빗장이 풀려버린 것이다. 친구에게 보내던 호기심의 눈길이 사실은 사랑이나 호감의 감정이었다는걸 그는 알고있었을까.

스파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인 청년이 그의 얼굴을 외면해버렸을때 데이빗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전통적이고 정석대로 만들어진 선댄스 영화이지만 앤드류 안이 미주한인 3-4세대의 어딘가쯤에서 살아가는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지만 한국인으로 살아가는것을 잊고싶지 않은 부모님은 데이빗에게 끊임없이 뿌리의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면서도 자신들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게끔 해주고싶다. 보통 이 두 가지의 가치가 부딪힐 때 앞세대의 폭력성과 후세대의 반항심이 충돌하기 마련인데 앤드류 안은 답답하고 복잡한 상황속에서 술을 마시고 잠든 아버지의 입 속에 꽂혀진 이쑤시개를 빼어내주는 데이빗과 술에 취한 아버지를 스파에 데리고 가 재운 뒤에 성적충동을 풀어낸 뒤에 자신의 때를 씻겨내는 데이빗을 배치하면서 그의 인생에 희망의 빛을 한 줄기 선사했다.

퀴어영화로 본다면 영화는 약간 아쉬울수도 있다. 퀴어로서 살아가고자 다짐하고 커밍아웃하는 청년의 이야기따윈 없기때문이다. 앤드류 안은 타인이지만 나 개인일수도 있는 친밀한 캐릭터 데이빗이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과정을 옅은 반복을 통해 겹겹이 쌓아 올려 후반 스파씬에서 자신의 때를 격하게 밀어내는 장면을 통해 인상적인 성과를 거뒀다.

데이빗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정의내리려고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대립하는 일이 앞으로 절대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다릴 것이고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부모님은 데이빗의 미래와 행복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믿는다. 초반에는 이 가족 안에서 데이빗이 행복해지는게 가능한 일일까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참한 한국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와 자신과는 다르게 대학에도 가고 큰 일을 하기를 바라는 아버지를 보면서 데이빗의 훗날이 너무나도 고통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독의 따숩다 못 해 군고구마 냄새가 날 정도로 따듯한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방황하지 않을게 확실한 데이빗을 보면서.. 그가 힘차게 달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지금 LA 어딘가에 있을 이 청년을 생각하면 그는 시간이 걸릴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길을 찾으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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