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멋진 한 명의 여성 캐릭터와 생명력을 가진채 영화의 큰 기둥을 담당하게 된 한 명의 남성 캐릭터를 만났다.



쓰리빌보드의 주인공인 밀드레드 헤이스는 딸의 살해사건 이후 몇 달간 범인 추정. 확정에 대한 이렇다할 소식도. 그렇다고 열의도 없어보이는 경찰들에게 항의하고자 버려진 도로 위에 세워진 세 개의 광고판을 사고 윌러비 서장에게 도발적인 문구를 새겨넣게 된다. 이 사건 이전 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하게 서술되지는 않지만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대화 내용으로 미뤄보자면 남편과 이혼 후 지독하게 메마른 생활을 이어나가는 그녀와 자녀간의 관계는 그리 달콤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딸을 잃고 동네 흑인만 조지고 있는 백인 경찰에게 대항하는 엄마라는 시놉시스에서 우리가 앞으로의 영화 속 전개를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의 통쾌한 복수, 또는 범인에 대한 반전같은 것일뿐이겠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누구의 예측도 빗나갈 수 있을 정도로 통제불능의 자신을 정의라 믿고 행동하는 과격한 캐릭터. 정확히 밀드레드와 딕슨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크게 윌러비 서장이 자살을 하기 전과 후로 분위기나 내용적인 측면을 나눌 수 있는데 그에 앞서 우리는 영화 속에서 공감하거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는 캐릭터 한 명을 골라야한다. 딕슨은 인종차별을 일삼는 확신의 백인 쓰레기이고 윌러비 서장은 성실하고 사람좋은 경찰인듯 보이지만 차별과 명분없는 폭력을 일삼는 명백히 잘못된 부하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확증이 있었다는 행동을 보이고 시종일관 모호한 단어 선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하기보다는 외면하거나 면피하려고만 하는 그럴듯해보이지만 설득력이 전혀 없는 캐릭터이다. 그렇다고 광고대행사의 레드 웰비를 쫓아가자니 그는 영화 속에서 중립을 지키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있게 믿고 쫓아가야할 캐릭터는 밀드레드인데 그녀는 존윅의 존윅이나 킬빌의 브라이드와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만 같지 성격은 전혀 다르고 상황 전환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수없이 많지만 그것이 모두 정확한 지점을 때렸다고도 볼 수 없다. 복수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영 부적합해보이는 애매한 점은 마틴 맥도나의 영리한 노림수가 되어주는데 서장은 사실상 췌장암의 통증으로 자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서장을 형처럼 따랐던 딕슨의 분노는 엉뚱한 곳을 향하고 이 엉뚱한 복수는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이고 앞서 등장한 밀드레드 캐릭터의 모호한 지점과 더불어 영화를 설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딕슨은 서장이 밀드레드가 건 3개의 광고판에 의해 자살당했다라고 생각하고 곧 그 생각의 화살은 광고판을 걸어준 회사의 레드 웰비에게로 돌아간다. 딕슨 자신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실패한 이 복수 하나와 광고판이 타버린 것을 보고 서장의 자살로 인해 분노에 차있는 경찰들이 방화를 저질렀다고 생각한 밀드레드가 저지른 딕슨이 안에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불을 내는 다른 하나의 실패한 복수. 이 두가지 전개는 사실상 영화의 가장 큰 가지이고 마틴 맥도나가 의도한 메세지인 것임이 분명한것은 서장의 편지로 인해 딕슨의 캐릭터가 진화하면서 확실해진다. 영화 초반으로 돌아가보면 딕슨은 으레 다른 미국 영화들-폭행, 강간, 살인, 인종차별이 등장하는 수많은 폭력적인 영화들-에 등장하는 그 무구하게도 많았던 어딘가 모자라고 언어구사력도 평균에 한참 못 미치지만 그 행동력만큼은 가장 앞장서있는 유해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 캐릭터는 현대 미국의 백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결점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맥도나는 그것을 샘 록웰이 연기하는 딕슨을 통해 우스꽝스럽지만 너무 하위 코미디가 되지 않도록 특별하게 신경을 썼을 것이다. 딕슨은 영화의 흐름상 클로젯 게이이고 그는 그런 성향을 숨기고자 게이인 웰비를 무시하는 호모포비아적 행위를 일삼는다. 그 수많은 결점을 가진 딕슨을 처벌하는 것은 그 대상을 착각한 밀드레드이고 서장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한 단계 진화한 딕슨은 아마도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일 중에 가장 의미있는 행동인 안젤라의 사건파일을 살려내는 유의미한 일을 해낸다.


사실 이 사건파일로 인해 사건이 급물살을 타고 범인을 특정하여 검거하는 그런 뻔한 행위는 이 영화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마틴 맥도나는 폭력적인 결점을 가진 한 명의 성인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를 원하고 딸에게 마지막 쏟은 비난의 말을 주워담지 못하고 후회하는 엄마가 사적인 복수로 인해 영웅이 되는 일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밀드레드의 복수가 실패하는 이유는 마틴 맥도나가 이 영화를 블랙코미디로 만든 이유가 된다. 이 실패의 연결은 딕슨이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웰비를 만나는 속죄의식 이후에 이어진다. 사실 이 병원 장면도 꽤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데 클로젯 게이이면서 호모포비아로 잘못된 분노의 대상으로 웰비를 골라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힌 딕슨은 그런 자신에게 오렌지주스를 건내는 그의 행동에서 자신의 지난 과거를 크게 후회하게 된다. 의미없는 폭력과 대상이 잘못된 분노의 오류로 인해 그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고 상처를 주었는지 떨리는 손으로 오렌지주스를 컵에 따라 자신에게 건내는 웰비의 용납과 인정을 느낀 그는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폭력이 얼마나 무의미한 메아리였는지. 그 누구에게도 정의를 실천한적이 없었단것을 그는 붕대 안에 비치는 화상의 흉터로 뒤덮인 웰비의 피부 그 너머로부터 뼛속깊이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딕슨은 퇴원 이후 술집에서 우연하게 엿들은 이야기로 안젤라 사건의 해결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얻게 되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DNA를 잔뜩 얻어 돌아오게 된다. 이 장르의 특성상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딕슨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검거하여 영웅이 되고 경찰로서 복귀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은 마틴 맥도나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그는 안티히어로=반영웅의 서사와 캐릭터를 줄곧 가져오고 있고 이 우울감이 감도는 영화의 흐름상 범인같아 보이지만 범인이 아닌, 그러나 어딘가에서 분명 폭력 또는 강간, 더 나아가 살인을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이 위험한 남자를 딕슨과 밀드레드는 개인적으로 해결하고자한다. 이 마지막 두 사람의 대화가 주는 결정적인 의미.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은 아니지만 다른 어떤 사건에서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 -이 단서는 앞서 경찰 서장이 제시했다- 둘의 아주 사적인 복수는 결코 정의롭다고 단언할수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죄를 내려줄 구원자가 되어줄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개인적인 정의이다. 술집에서 만난 그 남자=밀드레드의 가게에 와서 폭언을 일삼는 이 남자를 범인으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열린 결말을 만들기 위한 맥도나의 영리함이고 앞서 실패의 연결이 되어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서장은 마지막 유언으로 사랑을 언급했다. 이 뻔하지 않은 영화 속 가장 뻔한 레퍼런스는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너무나도 중요한 장치이지만 너무나 흔하디 흔해빠진 것이기에 아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차별, 분노, 증오가 되어 흑인과 여성, 장애인에게 폭력의 시선으로 떨어진다. 딕슨의 캐릭터도 많은 결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밀드레드의 캐릭터 또한 상당한 결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좋은 엄마이지 못했고 현행범으로 살인 미수, 방화로 철창행이 뻔한 그녀를 위기에서 구해준 제임스를  경멸의 시선으로 보는 위선자이며 자신의 행동을 정의라 믿고 실수와 후회를 지우고자 타인을 괴롭힌 것도 그녀 자신이다. 이 결함덩어리인 두 명의 캐릭터가 범인이 아닌 그 모호한 처벌의 대상을 응징하러 가는 것을 결정하고 떠나는 것이 아닌 가면서 결정하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 어딘가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웰비의 사무실에서 벌레를 뒤집어주는 밀드레드의 모습일 것이다. 마틴 맥도나는 비난의 대상을 옮겨가며 분풀이를 한다고 해서 사건이 해결되는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보여주었고 이 과격파들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 이후 생각의 몫은 관객에게 맡긴 것이다. 마틴 맥도나는 관객을 기만하지 않고 피해자를 착취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내리지 않았다. 이 기막힌 각본의 힘으로 어둡고 우울하지만 약간의 사랑과 희망을 가진 드라마를 만들어낸것이다.





- 단순하고 평면적인 전개를 원했다면 [복수]에 촛점을 맞췄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영화는 사실상 교화에 가까운 영화였다. 아카데미 기획전 시작하면서 모든 영화를 관람했지만 드라마적인 완성도는 이 영화를 따라올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도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지면서 영화를 봤고 프란시스 맥도먼드 x 샘 록웰의 앙상블은 전성기 코엔형제의 영화들을 보는듯했다. [킬러들의 도시]로 이미 엄청나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긴 했으나 그 특유의 인장인 우울한 색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밝은 코미디와 서사가 뚜렷하고 드라마성 강한 캐릭터들이 하나의 모자람 없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보니 10년간 더 깊어졌다는게 크게 와닿아서 너무 좋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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