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넷째 이모는 지금 가진 직업을 얻기까지 최소 수십개의 직업을 거쳐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방문판매로 책을 파는 일이었고 그게 내가 초등학생때에 가진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 가족도 실적에 보탬이 되어야했기때문에 내가 4학년때 엄마가 고전문학전집 (아마도 60권 정도로 기억하는데)을 거금을 주고 구매했고 그 때 처음 읽어보게된 소설은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이었는데, 이게 아주 오래전 일이라 그 글을 읽고 받은 즉각적인 감상을 지금에 와서 다시 정확하게 떠올리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중요한점은 내가 그것을 계기로 책에 미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5학년을 기점으로 1년에 독서노트 10권 이상을 쓸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중학교때는 영화감상반과 독서클럽 개별활동을 했었고 고등학교때는 지역도서관에서 빌린 책만 1년에 60권이 넘었었다.

그걸로 얻은 이득이랄지 도움이 되었던점은 언어 1등급이랑 또래에 비해 조숙했던 것 같고, 아마도 그 때의 나는 내가 책에서 읽은 것들을 대리경험한 것이라고 믿고 행동했었던 것 같다. 글쓰는걸 좋아하고 글도 잘 쓰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세월이 흘러 점점 책을 안읽게되고 유일하게 열심히 했던 취미활동인 영화보고 글쓰기도 요새는 점점 그 빈도가 낮아져 짧은 감상평 정도로 끝내고 있기 때문에 그 모터가 고장나 과도하게 튀는 보트처럼 다음에 읽을 책을 정해두고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과몰입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망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했던 내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긴 글을 쓰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분노를 쏟아내지 않는 이상 차분하게 글을 쓴다는게 자꾸 어려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걸 너무 좋아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었는데..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고 지금 내가 갑자기 고전에 꽂혀서 오만과 편견, 햄릿의 책 몇권, 그리고 최근에 열심히 읽고 있던 그리스인 조르바나 알렙, 두도시 이야기같은 것들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고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부터 전자책으로 옮긴 이후 독서량이 다시 정상수준으로 돌아오고 있긴한데 읽기 쉬운 단편집이나 에세이집 추리소설 위주로 읽고 있었기때문에 이제 다시 과몰입이 가능한 고전문학이나 읽고 나면 최소 2주는 아프고 얼얼한 책들에 대해서 다시 집중할 때가 되었음을 스스로 알고있는 것 같다. 

짜증나는 영화들이란 못만들고 잘만들고를 떠나 (어차피 이 부분도 개인적인 주관이라는게 영화라는 예술이다) 끝난 뒤에 곱씹을게 아무것도 없는 것들이다. 아무리 망작이라도 정말 아쉬웠거나 이 부분만 좀 나았어도 재밌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은 그나마 나은 것이다. 보고난 뒤에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나 그에 대해 부가적으로 기억할만 요소가 전혀 없는 영화들은 부아가 치밀어오르다가도 그 정도의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바로 잊고만다. 이렇게 분명히 존재했는데 존재하지 않았던것처럼 잊혀지는 일은 너무 슬픈일이다. 적어도 며칠간은 그것에 대한 생각이 계속 고여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이 창작자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아닐수도 있음 프로파간다 자체가 목적일수도 있겠지..)

그래서 책 읽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결국엔 클래식으로 돌아가는 음악이나 패션들처럼 고전문학에는 무수한 바리에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담겨 있기때문이다. 어쨌든 책을 읽겠다는 얘기를 길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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