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島渚
청해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최근 일본드라마를 조금 받았다. 가져온 일본 영화 dvd도 없고 오기 직전에 언니가 내 외장하드를 날려먹어서 자료를 하나도 못 담아왔다. 내 슈퍼컴에 있는 자료가 그대로 한국에 남아있어.....슬프다....]
밤마다 냉장고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려서 짜증나고 2층의 버릇없는 인간 둘이 시끄럽게 굴어서 미칠 것 같다. 저녁 거절한 이후로 더 심한듯? 아무튼 한 달만 참으면 니시오기쿠보로 가니까 조금만 참자


ましゃ









明日の太陽 (1959年) - 短編(단편)。脚本も(각본)
내일의 태양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dvd가 없는듯? 젊었을때 완전 잘 생겼네..하하



愛と希望の街 (1959年) - 脚本も
사랑과 희망의 거리, 완전 좋아하는 영화
 
青春残酷物語 (1960年) - 脚本も
청춘잔혹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을테지?  맞다. 세이슌(청춘)잔고쿠(잔혹)모노가타리(이야기)

太陽の墓場 (1960年) - 石堂淑朗と共同脚本 (공동각본)
태양의 묘지, 아 확 내가 한글 자막 만들어버려? 어차피 공부하는셈 치고 한국 오타쿠들 좋은짓 좀 해볼까? 영자막도 있는데 영어공부도 할겸 켈켈

日本の夜と霧 (1960年) - 石堂淑朗と共同脚本 (공동각본)
일본의 밤과 안개- 아 이 영화도 참 좋지. 그러고 보면 나기사 감독님은 동시대 프랑스의 고다르 못지 않게 죽이는 영화를 내놨단 말이야. 국외자들이 나오고 있을때 저 먼 아시아란 나라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 말고도 이런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걸 로제는 알고 있었겠지?

飼育 (1961年)
사육이란 제목, 꽤나 섬짓하고 적나라한 제목이군

天草四郎時貞 (1962年) - 石堂淑朗と共同脚本 (공동각본)
아마쿠사 시로우 토키사다. 나도  이 영화는 뭔지 모르겠다, 찾아봐야할 듯

小さな冒険旅行 (1963年)
작은 모험여행, 어드벤처물인듯?

私のベレット (1964年) - 脚本も
나는 배리트, 베렡토라고 읽어야 되는데 베리트는 무엇일까 대체 내가 모르는 영화를 왜 이리 많이 찍은거야 이 영감탱이 어서 번쩍 일어나서 더더더 많이 찍어보라굿

悦楽 (1965年) - 脚本も。原作:山田風太郎『棺の中の悦楽』 원작: 야마다 후로타로
열락

ユンボギの日記 (1965年) - 脚本
윤복이의 일기 한국에서 보고 오길 천만다행이었던..

백주의 살인마 白昼の通り魔 (1966年)- 原作:武田泰淳 원작: 다케다 다이준. 꽤나 양스러운 이름인데, 좋은 작품이 많네
이 영화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

忍者武芸帳 (1967年) - 脚本も
닌자무예장, 떠들썩한 작품

日本春歌考 (1967年) - 脚本も
일본춘가고, 정말 이름 그대로 번역해서 들어오는군, 뭔가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촌티나는 이름이 더 재미있을텐데 일본 봄의 노래를 생각하다. 이런식?

無理心中日本の夏 (1967年)
동반자살 일본의 여름. 이것도 영자막으로 봤는데 해석에 무리없을 정도

교사형 絞死刑 (1968年) - 田村孟、佐々木守、深尾道典と共同脚本。カンヌ映画祭招待作品 공동각본에 칸영화제 초청되었다고 주석 달려있음
한마디로 대박인 작품이다. 보면 입 못 다물걸

帰って来たヨッパライ (1968年) - 田村孟、佐々木守、足立正生と共同脚本 마찬가지로 공동각본
돌아온 술주정뱅이라는 영화인데 이 영화를 찾으면 처음에 스맙이 나와서 슬픔

新宿泥棒日記 (1969年) - 田村孟、佐々木守、足立正生と共同脚本 공동각본
신주쿠 도둑일기, 이것도 회고전할 때 본 것. 60년대 분위기 물씬. 유럽영화라고 해도 믿을듯

少年 (1969年) - 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招待作品 베네치아 영화제 출품
소년, 이것도 우왕굳x오억

東京戦争戦後秘話 (1970年) - カンヌ映画祭招待作品 깐느영화제 진출
도쿄전쟁전후비사. 끄억 너무 좋음

儀式 (1971年) - 田村孟、佐々木守と共同脚本。カンヌ映画祭招待作品 공동각본, 깐느 출품
의식, 프랑스 영화같았음

夏の妹 (1972年) - 田村孟、佐々木守と共同脚本。ヴェネツィア国際映画祭招待作品 공동각본, 베네치아 출품
그 여름날의 누이, 이 것도 영자막으로 봄. 나츠노이모우토이니까 그냥 여름의 여동생쯤인데 이렇게 한국식으로 번역하는 클래식센스가 있어야말이쥐..

愛のコリーダ - L'Empire des sens (1976) - 脚本も。カンヌ映画祭監督週間招待、イギリス映画批評家賞外国語映画賞、シカゴ映画祭審査員特別賞 깐느, 이탈리아, 시카고 등에 출품 

愛の亡霊 L'Empire de la passion (1978年) - 脚本も。カンヌ映画祭監督賞 깐느 출품
ㅎㄷㄷ 감각의 제국. 문제는 내가 이걸 중3때 봤다는거지 문화적 쇼크 장난 아니었음, 내 일본 영화의 시작은 러브레터와 철도원이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누구나 알다시피 나는 열렬한 러브레터빠이고 지금도 그렇다. 물논 지금의 이와이 슌지에게는 허먼 여우 정도에 대한 관심 정도밖에 없지만..어쨌든 그것은 그 당시 내 우주의 중심이었다. 일본영화=순수 였는데..감각의 제국은 나를 충격에 빠지게 만든 대표작이었음

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 - ポール・メイヤーズバーグと共同脚本。カンヌ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ナショナル・ボード・オブ・レビュー賞主演男優賞、英国アカデミー賞作曲賞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동명의 영화 주제가가 대히트 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법같은 음악. 브리티시 아카데미에서 상 받을 정도였으니..음악이 얼마나 뛰어났는가. 여기까지 왔으니 곧죽어도 류이치 사카모토 공연은 꼭 한 번 가 볼 생각이다.

風が吹くとき - When the Wind Blows (1986) ※日本語版監修
카제가후쿠토키, 바람이 불 때에..이 영화는 그 유명한 지미 무라카미의 작품임 일본어판 감수를 오오시마 감독님이 맡았다는 것

マックス、モン・アムール - Max, mon amour (1987) - ジャン=クロード・カリエールと共同脚本。カンヌ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 공동각본, 칸 영화제 경쟁부문
막스 내 사랑이라는 작품 침팬지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역을 샬롯 램플링이 연기한다. 솔직히 14년의 공백을 깬 이 영화에 어떤 매리트가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KYOTO, MY MOTHER'S PLACE (1991年) - 企画・製作:BBC SCOTLAND
교토 내 어머니의 고향

御法度 (1999年) - 脚本も。カンヌ映画祭コンペティション、サンクトペテルグブルク映画祭グランプリ 칸 영화제 출품, 상트페테르부르그 영화제 그랑프리
고하토, 이것 또한 충격이었다. 국내에서도 개봉했을때 봤다.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아사노 타다노부가 나왔기에 무릎쓰고 봄. 미성년자일때 봐선 안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버린 것일까 일찍 늙었다고 변명. 케케


오오시마 나기사 감독님은 지겹게 들었을테지만 알다시피 교토대 법학부 출신의 엘리트다. 지독하고 통렬한 사회 비판과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 등 일본 사회 전면에 부각되어있는 관료, 부르주아, 빗나간 의식 등을 꼬집은 대범한 감독이었다. 지금은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 병마와 싸우며 지내고 계시는데...아직도 호전되지 않고 있다. 부디 바란다. 고하토 이후 줄기차게 기다려온 감독님의 신작이 나오길...더불어 스즈키 세이준,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님도 모두 오래 사시길..계속 다음 작품 만들어주시길......

고로 나는 이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첫 번째부터 천천히 회고해 보고자 한다.
육쿠리육쿠리


http://www.hammertonail.com/wp-content/uploads/2008/09/h2n-oshima-man-who-left.jpg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영화에 격렬한 사회성을 띄고 있는 문제 감독 오시마 나기사
사랑과 희망의 거리, 청춘 잔혹 이야기, 일본의 밤과 안개, 태양의 묘지, 백주의 살인마, 교사형, 소년, 도쿄전쟁전후비화, 의식, 감각의 제국, 전장의 크리스마스, 고하토...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만든 영화는 가히 걸작..명작..이렇게 강렬한 작품이 있나싶지..시대가 그를 죽인 것인지, 그가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80년대부턴 거의 작품 활동을 멈췄다고 보면 된다.

http://auteurs_production.s3.amazonaws.com/stills/8405/Film_104w_DoubleSuicide.jpg

시노다 마사히로는 오시마완 다르게 정치색이나 사회파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거의 시대적 담론에서 벗어난 모더니즘한 색을 갖춘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허무주의나 고독한 염세주의적인 가치관이 유독 두드러짐.
메마른 호수, 사랑의 편도차표, 마른 꽃, 사무라이 스파이, 암살, 아름다움과 슬픔, 동반자살, 침묵, 삿포로 올림픽, 추방된 고제 오린, 악령도, 올빼미의 성, 스파이 조르게 등등..
오시마가 잊을 수 없는 문제작을 남겼다면 시노다는 잊을 수 없는 비주얼과 스타일을 남긴 작가였다. 아직 국내에 시노다 마사히로의 업적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고 다른 감독들에 비해 덜 알려져 아쉽기도 하고..국내에 소개된 dvd라고 해봤자 최근작 올빼미의 성뿐일까..그 영화도 참 어지간히 컬트영화처럼 되어서...국내에 한글자막으로 좀 더 많이 소개되었음 한다. 코파에서 하야시 가이조라는 미지의 영역을 소개해서 두근두근하는데..곧 시노다의 영화도 정식으로 많이 볼 수 있기를..

http://www.movingimagesource.us/images/articles/bon_a_rien_2_t_2-20090324-132323-medium.jpg

요시다 기주는 오시마나 시노다에 비하면 거의 알려진바 없는 완벽한 미지의 영역이다. 하야시 가이조만큼이나 알려진게 없는 감독일 것이다. 데뷔전 오즈 야스지로 밑에서 일했으며 오시마, 시노다 만큼이나 60-70년대에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고 철학적인 감독으로 인지된다. 그 이유인즉슨 영화를 만드는 재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던 오시마의 작품들이 관객의 눈에 '나 재능있소~내 작품 멋지지~'로 보이는데에 비해 요시다의 영화들은 때때로 관념적인 영화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재능을 저울질하는 것은 두 감독 사이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요시다의 영화들엔 사회적인 이야기나 정치색, 일본 사회의 거대한 물결보다 그것으로 인한 소용돌이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쓸모없는 녀석, 피가 마르고 있다, 달콤한 밤의 끝, 아키츠 온천, 폭풍을 부르는 18인, 일본 탈출, 물로 쓰여진 이야기, 호수 여인, 불꽃 여인, 안녕, 여름빛, 에로스+학살, 연옥 에로이카, 여배우 중 자백, 쿠데타, 약속, 거울 속 여자들,,
정말 학구적인 감독이었던 것 같다. 걸작 에로스+학살뿐만 아니라 최근작 거울 속 여자들..까지..특히 초기작에선 유럽, 이탈리아풍의 그림까지 볼 수 있다..때가 되면 요시다 기주에 대해 진지하게 파보고싶기도 하다..그리고 안타까운 점은 국내엔 요시다 요시시게로 이름이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http://wildgrounds.com/img/jap/terayama/04.jpg

테라야마 슈지는 저들과 동시대에 살았으며 그들과 많은 활동을 함께한 감독이었다. 그의 이름은 내게 혁명의 이름이다. 세 명의 감독과는 다르게 언더그라운드 노선에 서있던 감독으로 다양한 실험정신에 입각해 영화활동뿐만 아니라, 연극활동, 시를 짓고 책을 쓰고 정통 예술과 실험 예술을 넘나드는 활동가였다.
토마토케첩황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전원에 죽다, 안녕 하코부네, 미궁, 복서, 상하이 이인창관 등등등..
그의 작품을 온전한 정신으로 보는 것도 사실 어렵다.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기때문도 있다. 복잡한 꼴라쥬와 몽롱하게 만드는 거리감..테라야마 슈지는 영화로 혁명을 꿈꾸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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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마츠 코지. 그들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감독으로 국내엔 아직 그 이름이 덜 알려져 있다. 사실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좋다. 나도 시네마테크 상영을 통해 알게된 감독으로..60년대에 굉장한 업적을 남긴 감독이다.
정사의 이력서, 벽속의 비사, 태아가 밀렵될때, 더럽혀진 백의, 적군/PFLP: 세계전쟁선언, 현대호색전, 가라가라 두번째 처녀, 처녀 게바게바, 천사의 황홀, 물이없는 풀장, 17세의 풍경..
사실 와카마츠의 영화를 처음봤을땐 충격이 심했다. 어린 나이도 나이었겠지만, 당최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폭발적인 열기가 60년대에 가능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어서였다. 오시마 감독의 영화도 프로듀싱하고 굉장한 다작을 했을 정도로 정열적인 감독이었고 그 누구의 노선과도 겹치지 않는 독자적인 영화를 만들었던 독립적이고 아방가르드한 감독이기도 했다. 사실 그의 영화를 말로 설명한다는게 어렵다. 특히나 벽속의 비사나 천사의 황홀, 물이없는 풀장같은 작품들은 직접 보라고 권유하고싶다. 한국의 60년대 영화에 이런 천재 호색한이 없었다는게 조금은 슬퍼진다.
즐거운 소식은 다른 감독들은 활동이 없는데 반해 최근 테라지마 시노부와 신작을 찍은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주연한 시노부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것.



하니 스스무, 일전에 전주에서도 소개되었고 언더그라운드 걸작선에서도 다시 한 번 소개된바 있는 하니 스스무는 다시 발견되어야할 감독이라 생각한다. 60년대 일본 뉴웨이브를 선도했던 이들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기법으로 고집스럽게 이야기했던 스스무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까지 아우르고 있다.
교실의 아이들, 불량소년, 그녀와 그, 첫사랑-지옥편, 완전한 삶, 브와나 토시의 노래,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아프리카 이야기
다른 감독들에 비해 청소년과 오지의 아이들, 그리고 다큐멘터리 화법을 중시했던 스스무는 시네마 베리떼의 정신을 고수한 학구파이자 예술가였다. 스스무는 영화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와, 영화이론에도 능통했으며 부모의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받아 사회와 아이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그런 가치관들이 그의 영화에 온전하게 녹아있음은 물론이다.

http://ecx.images-amazon.com/images/I/51L1a6UMSML.jpg

이마무라 쇼헤이는 국내에도 연구자료가 많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오즈 야스지로에게서 영화를 배웠고 50년대에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사회파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나 좀 더 근본적인 인류에 대한 질문과 탐구로 많은 걸작을 남겼다.
도둑맞은 욕정, 니아짱, 돼지와 군함, 일본곤충기, 붉은 살의, 인류학 입문, 인간증말, 신들의 깊은 욕망, 호스티스가 말하는 일본 전후사, 복수는 나의 것,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간장선생,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막말 태양전의 각본을 썼을 정도로 유머러스했던 이마무라 감독..그의 영화의 키워드는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지독한 탐구 정신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그의 작품은 영화 자체가 하나의 학문이기도 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르느와르의 그림속에 있는 사람들 만큼이나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풍긴다면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속 인물들은 고갱의 그림속 인물들처럼 원시적이고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게 만든다. 그의 작품 신들의 깊은 욕망과 복수는 나의 것을 비교해보면 그가 탐구하는 인간의 풍습과 내면 세계에 대한 탐구 의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생명의 원천 여성과, 풀, 땅과 물을 찬미하고 관찰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정말 아름답다..그의 영화가 계속해서 사랑받고 끊임없이 화자되는건 그 생명력때문이 아닐까..


그 외에도 야마다 요지, 스즈키 세이준..
등등..
수많은 일본의 60년대 감독들,
이 다음엔 80년대-90년대를 빛낸 일본 감독들을 파볼까한다.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를 시작으로 일본 60-70년대의 뉴웨이브 영화들을 모두 독파해봐야지..
그리고 그것을 모두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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