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줄창 듣는 슈베르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가지고 싶다고 매일매일 말했었지?
그치? 영화보다 이 장면 너무 가지고싶다고 계속 찡얼거렸잖아.



빨간 불이 켜졌다. 앞으로 뛰지도 뒤로 돌아서지도 못한다. 15살 소년 동환이는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만들기 위해 뛰어야한다. 그리고 울지 않는다. 내리는 빗소리에 자신의 울음은 목구멍으로 삼켜버렸다.



이도윤 감독의 2007년 단편영화 '이웃'
사형수의 어머니 정희는 오랜 시간 일에 매달려 있으며 약을 삼키는 수단으로 사이다를 마신다. 그런 그녀가 다니는 교회에 새로운 여자 연순이 찾아온다. 그녀는 정희의 아들에게 살해당한 딸의 어머니로 두 여자는 교회에서 주관하는 효도 관광에 동행하게 된다. 두 여자의 기묘한 동행의 흐름은 아프고 슬픈 갈색빛이다. 주연배우 엄옥란씨의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여서 나까지 습하게 만들 정도였다. 용서란 무엇인가? 끝없는 물음.





부산에서 아는 지인의 단편을 보기 위해 매진된 티켓을 부랴부랴 구해서 보게된 섹션 중의 한 단편 올드 랭 사인. 그렇게 갑작스럽게 보게된 영화에서 그렇게 눈물을 쏟을줄이야....Auld Lang Syne은 스코틀랜드의 방언으로 그 나라의 민요다. 즐거웠던 옛날의 정을 추억하며 다음을 기약하자는 느낌의 음악으로 국내에서도 번안되어 불리고 있다. 보통 망년회때 술에 취해 꼬인 혀로 즐거이 부르는 사람도 있으며 졸업식날 급우들과 즐거웠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이 악물고 부르는 아름다운 경우도 있다. 

탑골 공원 앞, 무료 급식을 받는 남루한 차림세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영화는 시작한다. 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 반갑고 뜻밖이지만 긴 세월의 시간차가 어색한듯 두 할아버지의 시선은 흔들린다. 대화로 미루어보아 젊은 시절 연인이었음이 드러난 두 사람의 관계. 둘은 모텔로 향하는데........그곳에서 나누는 애틋함을 그리도 섬세하게 표현하다니..노숙자가 되어버린 젊은 날의 연인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머리가 빠져 훤한 이마, 검게 그을린 피부, 거뭍거뭍한 수염..흐윽...노쇠한 치아때문에 단무지조차 씹지 못하는 그에게 단무지를 씹어주는 남자..흐앙...흑..흐그...
너무 울어버려서 시야를 가려버릴 정도로 펑펑 울었다..너무 슬퍼서....이런 사랑도 있구나...젊은 날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해서 말하며 미안해하는 남자, 그리고 아무렇지 않다는듯...모든것을 용서하는 그 사람...그리고 이제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가야하는 두 사람..이게 마지막일것 같아..우리 이제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잘가요..내 사랑..흐앙...너무 슬펐어.....

동백 아가씨의 단편을 만들었던 소준문 감독이 오랫만에 찍은 영화라고 한다. 보기 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봐서 누가 만들었을까 했는데 소준문씨였다. 정말 반가웠다. 장편을 준비중이라고하니 열심히 응원할 작정이다..소준문씨 사랑해요..흐앙...




이 눈, 이 머리.
제대로 꽂혔어!







역시 뉴욕 블러드는 속일수 없다. 뉴욕의 어두운 부분을 좋아했고 그런 부분을 자신의 영화에 투영하길 좋아했던 마틴 스콜세지의 '인생 수업'은 한없이 뉴욕스러우며, 뉴욕의 수다스러운 부분을 사랑하고 또 그렇게 말하는걸 주저하지 않는 우디 앨런의 에피소드는 이름마저도 그다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소품 영화에 걸맞게 잔재미를 가지치기하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러닝타임에 알맞은 소비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스콜세지의 인생수업에서 닉 놀테가 그림을 그릴 때고 그녀를 생각할때고 시종일관 튀어나오는 Annie Lennox가 부르는 A Whiter Shade of Pale은 마치 이 에피소드를 위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닐까하는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도 가능케 할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중년의 화가인 라이오넬의 여제자에 관한 비뚫어진 욕정과 성적 긴장감. 인생수업 사이에서의 모순된 감정기복은 뉴욕을 배경으로 예술가들의 모순된 기질을 재미있게 비꼬고있어 가벼운 흐름의 영화치고는 놀랄만한 사색도 가능하게 한다.  닉 놀테의 연기가 좋으며, 로잔나 아퀘트가 한창 리즈시절일때  출연한지라 그녀의 얼굴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미국 인디 영화계의 블록버스터 배우인 스티브 부세미는 온갖 영화에 추접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도맡아하며 컬트의 경지에 올랐는데, 이번에 맡은 난해하고 이기적이며 우스꽝스러운 배우 연기는 에피소드에 잔재미를 주는 역할을 톡톡이 해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우디 앨런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의 영화에서 늘 그래왔듯이 기존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를 전복적시키며 시츄에이션과 수다스러움으로 이어나간다. 어머니와 아들간의 여자친구를 둘러싼 일종의 갈등을 고층빌딩 사이에 나타나는 거대한 어머니의 형상을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어 그자체로서의 원초적인 재미와 극에서 오락적인 재미를 유발하는 장치로써의 재미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다. 그다지 상쾌한 결말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우디 앨런의 페르소나였던 미아 패로우의 여리여리한 모습과 작은 재미들로 만족감이 높은 편이다.






+ 최근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와 함께 <도쿄>의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하고, 박찬욱은 세계 11명의 감독들과 함께 <사랑해, 뉴욕> 옴니버스 영화에 참여한다고 한다. 얼마전 국내에 개봉한 <사랑해, 파리>의 감독진에 비하면 그다지 끌리는 감독은 아직 눈에 띄지 않지만 비주얼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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