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춤추는 장면
원래 이름은 아리스가와



누구보다 먼저 예고편을 접하고 두근두근 설레이는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렸던 키엔체 노르부의 영화.
신비롭고 아름다운 제4세계 동화같은 느낌.
살면서 나이가 들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노는 물이 달라지고, 이미지와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를 접할때마다 아찔하다. 돈덥은 히말라야에 사는 남자다. 그는 언제나 미국을 동경하고 있고 기회만 주어지면 부유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많은 그 세계로 떠나고자 한다.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은 진짜일까? 돈덥이 소유하고싶어하는 황금의 나라 미국은 과연 진짜로 드림 랜드일까?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으레 행복한 세계가 손에 굴러들어올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게 진짜로 가능한 일일까?
잃을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것도 없고 가진게 없는자는 지킬게 없으니 무사 태평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자기 브랜드화의 시대다. 어느 정도 자신을 꾸미지 않으면 시선을 받을수도 화제가 될수도 없다.
돈덥의 시야는 스님을 만나는 것으로 변한다. 소남이란 소녀는 학교에 들어갈수있는 성적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를 부양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고향에 돌아온다. 세상엔 자신의 희생으로 남의 행복을 담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 나온 영화를 찾아 보는게 좋고, 먼지 쌓인 dvd를 싸게 구입하는게 좋다. 도라에몽 스티커 하나에도 광분하고 직접 만드는 물건들에서 희열을 느낀다. 앞으로 이런 내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난 사람 너무 많고 특별한 사람도 많은 시대다. 그들 사이에 낄 여유도 없고 치열한곳에서 살아남을 능력도 없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주는것에 기뻐하는 이대로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왕창 가벼운거 화이트 칙스같은거 보고나면 완전 잊어버릴수 있고 보고있을땐 전혀 아무 생각 안해도 되는 그런거 찾다가 몇일전에 출발 비디오 여행이었나 거기 나온 영화 봤다. 재미는- 없다. 내용도-없다. 그냥 뻔한 이야기, 사랑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찾을수 있고 참트루 러브는 가까이에 있다. 블라블라 교과서적이고 사랑스럽고 동화같은 로맨스들.
그러나 재미있는점은 이 영화에 세 명의 제니퍼가 나오는데 그 중 굿윈이 맡은 지지란 캐릭터가 내 눈길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제니퍼 굿윈이 나온 영화중 그녀가 매력적으로 나온 영화는 적어도 나에겐 없었다. 지지란 여자는 매번 남자에게 차이고 혼자만의 착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이게 좀 나의 심금을 울린것 같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난 사랑 영화가 늘 어렵다고 생각한다. 어떤 포인트에서 감동을 느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상황에 공감도 느껴본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난 이런 캐릭터에 늘 약하다.
영화는 정말 우습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때문에 도장을 찍고 서약을 맺는게 결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닐이 하루 아침에 돌변해 결혼 반지를 안겨주는 장면도 너무나 관습적이고 매리와 코너가 맺어지는 장면은 모든 커플을 키워 맞춰 놓고 남은 자들을 억지로 교배시키는 괴상망측한 엔딩이었다.
사실 지지란 여자도 결국엔 그녀의 연애 상담을 해주던 알렉스와 드라마틱한 엔딩을 맞지만 전화통을 보거나 찢은 명함을 테잎으로 도로 붙이는 모습, 그를 보러 갔던 바에서 어설픈 거짓말이 들켜 한 잔 받아먹는 그녀의 모습들이 사랑스럽고 재미있었다. 이런 여자, 나만 있는건 아니겠지? 하는 의외의 위로도 받고 말이다.
세상엔 서로 사랑해서 결혼에 성공하는 커플이 있지만 그런게 아닌 사람도 있다. 결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목적이 결국 사랑이 아닌 사람도 있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 가쉽이나 가비지 리스트에 올라올만한 영화이지만 지지 캐릭터만큼은 매우 사랑스럽고 연민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저러나 지지란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모리스 슈발리에가 주연이었던 빈센트 미넬리의 지지일까? 그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의이름에서 따온것일까?
좋아하는 연인때문에 괴로워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웃음을 띄고 마는 미련한 여자들에겐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만다. 이런 미련한 인간같으니라고



고2때. 18살때 가을 늦가을. 겨울되기 전
18살때 친해진 친구 한 명, 그리고 같이 놀던 친구 또 한 명이 이 영화를 보고 와서는 나보고 니 스타일이다고 침을 튀기며 말했던 올드보이. 희안하네. 그 애랑은 지금 전혀 서로 몰랐던것처럼 굴고 있으니, 사실 생각도 아예 안난다. 1년에 1번 생각 날까 말까한 그 애, 그 때는 그렇게 친하게 지냈는데. 우습다.
어쨌든 다른 한 명, 2년간 팥이랑 밀가루처럼 붙어다녔던 친구랑 우리 동네 극장에 보러갔지.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긴 지하철이 지나면 의자가 덜컹 거리고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공짜로 무수히 많은 영화를 봤던 그 지저분하고 협소한 극장. 친구는 화장을 하고 나는 어른스럽게 입겠다고 차려입고 가서 한 말은 올드보이 두 장 주세요. 사실 떨렸다. 나는 겉으론 매번 괜찮아 괜찮아 쿨한척 하지만 속으론 엄청 떨고있는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표를 안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에 심장이 오그라들것 같았다. 나는 정말 이 영화를 보고싶단 말이야! 의심스러운 눈길로 한 번 바라본뒤에 표를 두 장 주더라. 1973년에는 영화값이 360원 정도 했더랬다. 내가 중학교땐 영화표값이 6천원이었는데 청소년은 5500원인가 5천원인가 그랬다. 올드보이는 7천원짜리 영화였다. 그 옛날에 멀티플렉스 시절이 도래하기전 단성사나 스카라, 명보, 피카디리가 흥행하던 시절에는 다이하드나 여름 성수기 블록버스터 영화가 나올때면 영화관람료가 500원 정도씩 오르곤 했다. 중학교에 다닐적에 학교에 미션 임파서블 바람이 불어닥친적이 있는데 그 때가 메가박스가 처음 생긴해였다. 나는 고딩때 멀티플렉스란 개념을 처음 접했지 중학교땐 무조건 지저분하고 작은 동네 극장이었다. 올드보이는 7천원짜리 영화였다. 극장 수입과 기타 이익들의 음모로 영화비가 7천원까지 올랐지만 조조 영화는 2천원에 볼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을 끌어안고 영화를 본 나는 강한 충격에 휩싸였다! 17살 봄에 난 복수는 나의 것을 봤다. 쥐가 출몰하는 천호동의 극장에서 그 영화를 봤을때 나는 반칙왕에서 본 그 놈, 송강호를 봤던것이다. 아니 저사람 코미디 배우 아니었나? 복수는 나의 것은 일종의 문화 충격, 그 이상이었다. 세상엔 이런 영화를 만들어 극장에 거는 사람도 있구나. 두나는 키키의 모델에서 링으로 데뷔한 소녀도 아니었고 신하균도 공동경비구역에서 본 그 순진한 하사도 아니었다. 내가 영화란 매체에 매력을 느낀건 러브레터가 맞지만 영화 자체가 폭넓은 문화 경험의 신천지라는걸 깨달은건 박찬욱의 영화였다. 올드보이는 세간에서 시끄럽고 천박하게 떠들어댈만큼 괴상망측한 엔딩을 가지고 있었고 기존 상업 영화의 구조를 뒤집은 신선한 영화였다. 한국 영화 산업엔 쌈마이 영화와 임권택 영화뿐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던 복수는 나의 것, 그 후로 1년 그는 올드보이를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놀라운 이유는 움직이며 말하는 사람들, 프레임 안의 구도와 총천연색뿐만 아니라 입체 음향등 다룰수있는 방식에 거진 한계가 없다는것때문이다. 때론 평면적인 텍스트나 그림들이 충격을 줄때도 있지만 난 아직도 영화만큼 다각도로 오감을 충족시키는 문화를 본 적이 없다. 올드보이는 새로운 시발점이었고 내가 학교에 더욱 정을 떼는데 한 몫한 영화이기도 하다. 겨울 방학때 나는 미술 입시를 하면서 다방면의 책을 섭렵했다. 그리고 10대의 마지막 해에 나는 페데리코 펠리니와 기타노 다케시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걸 발견한 코페르니쿠스의 심정과 같았다. 나는 계속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이미 빠져나올수 없게 되었지만 돌아가고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열아홉살때 씨네코아를 처음 갔었다. 그곳이 없어지기까지 많은 영화를 그곳에서 봤고 스카라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사랑해 말순씨였다. 추억의 장소들이 점점 사라지고 변한다. 그래서 기를 쓰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차곡차곡 기억해둔다.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웠는지. 나에겐 소중한 보물들이기 때문에 내가 더 밤에 잠을 못 이루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도 바닷물에 들어갈수있지 않을까?
우리는 아주 추운 겨울에 만났다. 지금은 무더운 여름인데 우리는 서로의 안부조차 모르고 있다.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너말고 착각하지마 니가 궁금하다는게 아니야


왜 그렇게 두근거렸을까? 미야자키 할아버지는 이때만해도 분명히 기적을 믿었을테다. 아니라면 하울같은 캐릭터가 나왔을리 없다.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고 주인공들은 평화를 위해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
다른 이념적인 가치관은 제쳐두고 하울과 소피의 로맨스가 두근거려 구름 사이로 가슴이 콩닥 콩닥



아라타ㅜㅜ님은 좀 짱인듯ㅜㅜ 너므 멋있었다. 전에 누구였지? 지인이었나. 살인자여도 사랑할수 있냐고 물었을때 당연히 그럴수있다고 대답했는데. 아라타같은 남자면 살인자여도 상관없을듯. 이 남자가 날 죽였으면 좋겠다. 뭐 이런 느낌도 들고
루이가 그랬던것처럼 나도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 것 같다. 원작을 안봐서 얼마나 재미있는 소설인지 잘 모르겠지만은 영화는 괜찮은편. 후지와라 타츠야랑 오구리 슌이 불량배로 깜짝출연한것도 완전 서프라이즠ㅋㅋㅋ
아니 그런데 이 영화 소개가 고독한 20대 여성의 섬세한 내면 어쩌고 해놨는데 주인공 루이는 갸루에 시바상의 정신세계는 보통의 것과는 전혀 다르고 아마도 펑크족에 약간 정신 이상에 둘 다 양성애자이고 이건 보통의 젊은 20대가 겪을법한 이야기는 아닌것 같은데~보편성이랄것도 전혀 없고말이야. 특히나 평민들은 부러진 이빨을 부셔서 가루로 만들어 먹는 여자의 심정이나 말보로 자국을 내고 향을 꽂은 살인마에게 그다지 공감하지 못할것같애.
차분한 분위기 너무 좋은데- 텐텐에 나왔던 요시타카 유리코, 히로스에 료코 닮아서 너무 예쁘게 봤는데 아직 88년생. 이 어린 여자애한테 그렇게 높은 수위를 요구하는게 정상인가? 가끔 의문도 들고. 여러모로 의문투성이인 영화. 느낌 느낌 느낌 좋다는 말은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수 있는 의뭉스러운 말이고..소설을 읽어봐야 다른 부분도 모두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파격적인 이야기와 묘사들. 어쨌든 결론은 아마가 굉장히 사랑스러운 캐릭터이고 아라타는 영화를 계속 찍어야 한다는 말씀.



고양이 구구
만화가 선생님
맛있는 맥주
검은 바지와 검은 티셔츠
사랑할수 없는 사람과 사랑받읈 없는 사람.
사랑해주고 사랑받고
재능이 없다는걸 깨달았을때
또 다른 기회가 기다리고 있네요.
세상이 이런 영화와 같다면 슬플 일이 무어가 있고 울 일은 기쁠때밖에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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