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 영화 좋아한다구하면 일빠라고 욕을 먹곤하는데 문화 취향이나 기호가 왜 욕을 먹어야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애국자라해도 60년대 문예 영화 일색이었던 한국 영화랑(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혁명이니 파란이니 정말 뒤집어질만한 영화만 만들었던 60년대 일본 영화의 갭이 얼마나 큰지 인정할 수 있을걸? 오시마 나기사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60년대 영화도 충분히 엄청나지만 마스무라 야스조 이 양반이 60년대에 이룩한 영화들은 역사적으로두 가치가 크다. 아니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엄청난 사람이지. 일본 영화 처음 접한건 오즈 야스지로와 이치가와 곤이었지만 결국에 빠지게 된 건 오시마 나기사나 마스무라 야스조같은 강한 감독들, 그리고 테라야마 슈지나 ATG 출신 감독들. 아무튼간에 이 나라는 경제 성장도 빠르게 이륙하고 문화 개방도 서둘렀지만 영화 만드는 솜씨도 기가 막혔다. 물론 우리 나라에도 김기영이나 이만희같은 천재들 있지만 일본 애들 보면 부럽고 시샘도 나고 존경스럽기도 하고. 뭐 그렇다.
눈 먼 짐승은 마스무라 야스조가 1969년에 만든 영화다. 벌써 세 번 봤지만 진짜 이건 걸작이다. 알다시피 1968년은 시끄러운 해였다. 전세계적으로 사회 운동과 학생 운동 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레볼루션의 해이기도 하고말이다.
2005년에 시네마테크에서 마스무라 야스조의 존재를 알았고 이 영화를 본 뒤에 충격은 어마어마! 갈수록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정신을 못차리고 화면에만 집중했던것 같다. 주로 마스무라 야스조와 이치가와 곤의 영화에 출연했던 후나코시 에이지가 시각장애인 조각가로 등장하는데 배우의 눈이 선글라스에 가려 보이지않는데도 이렇게 섬뜩할수 있다니 놀라웠다. 간혹 옛날 배우들 파워에 기가 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사람이 그랬다. 분명 그는 메소드 연기의 정점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제스쳐가 나올수 없어! 중간에 갤러리의 직원을 제외하고는 단 세 명의 등장인물과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영화. 연극이라기보다 차라리 무용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대사들은 메아리같고 배우들의 몸짓은 고통받는 무용가같다. 처음의 심정은 뭐 이런게 다있어?였지 아마.
모든게 훌륭히 조합된것 같다. 변태(?)적 취향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이 원작이고 그 엄청난 원작을 순수하게 자신의 재능으로 표현할수 있는 천재 마스무라 야스조의 연출 도저히 60년대 감성이라고 볼 수 없는 마노 시게오의 세트, 후나코시 에이지의 연기. 거대한 육체 세트와 배우, 그리고 그 위에서 조종하는 마스무라 감독에게 완전 압도당하는 영화!



고져쓰~쎅씨~글래머뤄스~어썸~
모든 글램한 단어를 다 갖다붙여두 모자랄 영화가 아니라 영상 아트 꼴라쥬
조나단이 브라이언 슬레이드로 나오구 이완이 커트 와일드로 나왔지만 이 두 남자가 데이빗 보이와 이기 팝이라는건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 펑크나 메탈은 완전 질색이고 얼터너티브도 그다지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컨트리를 많이 듣는것도 아니요. 브릿팝이라고 해봤자 귀에 쏙쏙 말리는 곡만 듣는 나에게 본드 마냥 쩍쩍 달라붙는 글램 록은 하우스만큼 좋아하는 장르.
사운드트랙도 좋지만은 더 좋은것은 조나단과 이완이 맡은 배역이 그대들과 싱크로율이 좀 과하게 쩐다는거. 게다가 크리스찬 베일이 찌질한 록빠 아서로 인디 퀸 토니 콜렛트가 브라이언의 시크한 부인으로 등장하는데 조연마저도 완벽하다는거. 그리고 그 아름다운 비주얼들. 도저히 정상적인 상태로 보고있기 어려운 벨벳 골드마인. 춤이라도 추던가 뽕이라도 맞으면서 봐야할듯하다. 증말 영화에 마약처럼 홀린다는것은 80년대 일본 영화 이후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토드 헤인즈가 만들어놓은 이것은 진정 악마같은 영화!



원래 제목은 람보의 아들:홈 무비였는데 한글 의역 제목은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이건 뭐 원제고 나발이고 둘 다 제목이 막장이잖아. 평이 하도 구리길래 얼마나 유치하고 재미가 없었으면 이라는 생각에 좀 더 찾아봤는데 밀리언즈 곱하기 비카인드 리와인드라길래 두 개 다 좋아하는 나에겐 금상첨화겠거니하구 봤는데 이거 넘 사랑스럽잖아. 애기도 너무 귀엽고, 이런 애기 볼 때마다 집에 데려와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고싶다는 누나의 욕망이 들끓어오른다. 아무튼 영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감동의 육수폭포가..주인공이 애들 둘이라 살짝 유치하긴한데 순수한 꼬맹이들끼리 알콩달콩 우정의 맹세도 하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오랫만에 보니 순수한 욕망이 들끓더라능. 게다가 볼 땐 몰랐는데 보구나니까 이거 만든 감독이 히치하이커 만든 가스 제닝스였다.




이 벽 헌팅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던데
사람이 무얼 하든간에 근성이랑 인내심 뿌러스 대담함 있으면 성공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10년 후에 봉감독은 미카엘 하네케에 버금가는 거장이 됩니다.



알랭 레네의 뮤리엘을 보게된 것은 순전히 이 영화 때문이다. 뮤리엘이란 이름에 득달같은 반응을 보내는것도 모두 이 영화 때문이고 여성으로, 독립된 자아로서 살아간다는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준것도 이 영화 때문이다. 잘난게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던 어린 시절에 뮤리엘의 웨딩을 보게 되었다. 나만큼이나 못생기고 살찐 뚱보에 잘 하는게 없고 친구도 없는 뮤리엘은 잘 생긴데다 재능도 뛰어난 데이비드와의 계약 결혼으로 꿈에도 그리던 결혼을 이룬다. 예쁘고 화려한 웨딩 드레스와 잘 생긴 남편, 달콤한 신혼 생활을 꿈꾸던 그녀에게 결혼이란 그다지 환상적이지 않다. 친구도 떠나가고 가족에게도 소홀하게 대한 뮤리엘에게 신의 계시가 내려진다. 뮤리엘 늦지 않았어! 너의 인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는거야, 운명이란건 존재하지 않아! 눈을 뜬 그녀는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모든것을 박차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비로소 나도 깨달았다. 맹목적인 운명론이나 물질주의가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걸 말이다. 내 인생의 영화 리스트 10 쯤에 당당히 들어가도 될만한 영화로 항상 뮤리엘의 웨딩을 꼽는다. 다소 전형적인 성장 영화이자 자아 찾기 영화이지만 토니 콜레트의 분연한 아름다움이 내게 자신감과 독립심을 일으켰다. 운명이란건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 때의 못난 나는 지금은 없지만 새삼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데 사소한 화풀이를 해댔던 내 어릴때가 가끔 떠오른다. 그리고 꿈에서 만나면 얘기해주고싶다. 너는 특별히 못나진 않았다고 사소한 것에서 오는 행복의 중요함을 알고 있는 너는 다른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고 예쁘다고 어깨도 만져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싶다.



빌리 와일더. 잭 레먼. 같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해서 사랑하고 가지고싶어했을텐데
모든게 잘 맞는다는걸 이런걸 두고 하는 말.
벡스터는 소심하고 다소 능력이 떨어지는 회사원으로 그의 아파트를 회사 임원들의 불륜 제공처로 빌려주고 있다. 그런 그에게 프랜이라는 예쁘고 귀여운 여자가 나타난다. 이 영화에서 진짜 명장면은 쉘드레이크 전무와 프랜이 그런 사이임을 알게된 벡스터가 그들에게 아파트를 빌려주고 바깥에서 시간을 때우는 장면이다. 모든걸 알고서도 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걸 알면서도 코믹스러운 모습으로 바깥을 서성이는 그의 모습에 눈물이 펑펑 쏟아지지 않을수가 없다. 자극적인 상황 연출이나 과장된 연기없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코미디를 창조해내는 빌리 와일더와 잭 레먼은 그야말로 천재다. 게다가 이렇게 훈훈한 코미디라니, 본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테니스 라켓 위에 파스타를 삶아 내던 그의 모습이 그렇게 생생할수가 없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은 이런데다 쓰라고 있는 말. 또 보고싶다!



청계천이나 종로에서 천원에 사 온 dvd를 집에서 보고있으면 언니가 내 등뒤로 기척없이 나타나 그런건 왜 보고 있냐고 핀잔을 준다. 그게 아마도 몇 년 전이었는데 우리 언니는 매번 같은 말을 한다. 그게 재미있냐, 대체 언제적 영화냐. 그러더니 언젠가 내가 방에다 둔 히치콕의 싸이코를 가져가서 보더니 나에게 흥분된 어조로 엄청 재미있었다라고 말한다. 간혹 주변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추천해 준 고전 영화가 재미있었다라는 반응으로 돌아오면 되려 뿌듯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 누군가 물었던 말에 그냥 사람들이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러는것 뿐이에요. 라고 점잖게 말했던적이 있다. 정성일이 언젠가 인터뷰에 답했던 말들 중에 히치콕의 살인을 두어번 이상 보지 않은 사람과는 영화에 대해 말하고싶지 않다고 했던적이 있다. 머릿속에 든게 너무 많은 사람이라 누가 묻지않아도 자기 지식을 쏟아내는 사람이고 워낙 극적인 화법으로 말하는 사람인지라 그렇게 말했다는것에 대해 우월감에 도취되어있군..이라는 비웃음은 사양했다. 어떤 블로그의 화자와 객들도 정성일의 그런 화법에 대해서 나는 영화 천민이로세 그와 인사할 자격도 없다는둥의 우스개소리를 나누더라.
히치콕의 영화들은 영화광이라면 누구나 거쳐갈법한 고전 영화다. 히치콕의 두꺼운 자서전과 트뤼포와의 대화집을 기꺼이 구해 읽고 정독하고 그의 무성 영화 시절과 영국 시절의 영화들 그리고 유작까지 수십 개의 영화들을 챙겨볼 정도로 그의 마니아인 나로서도 살인을 두어번 이상 보라는 얘기는 그다지 하고싶진 않다. 초기작이라면 오히려 27년작 하숙인이나 (얼마전 처참하게 리메이크 된) 34년작 The Man Who Knew Too Much를 더 추천하고싶으니까말이다. 살인은 허버트 마샬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것 외엔 나에게 그다지 흥미를 준 작품은 아니었다. 그의 30년대 영화들이 세련된 스릴러 영화의 모양을 다져나가는것과 달리 그의 초기작들은 몇 몇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매력적인 작품은 별로 없다. the ring의 스파링 장면이나 하숙인의 대부분 많은 장면들은 정말 놀랄 정도로 멋지지만. 그런 내가 왜 이 영화 얘기를 하고있는지 모르겠지만....살인!에는 히치콕 영화에 주 테마로 등장하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나오는데 그 대상이 미녀인것만 다르다. 허버트 마샬의 모습은 정말 댄디하고 멋지다는것,,



보다가 기진맥진할 정도로 공허하게 만들만한 영화 있을까? 라는 물음에 대답으로 돌아왔던 차이 밍량의 애정만세. 만난지도 벌써 4년째인가,,현대인의 고독을 기가막히게 잡아냈다는 중경삼림하고 같은해에 태어난 작품, 그러나 왕자웨이 감독의 인기가 치솓을때 차이 밍량을 아는 사람은 매니아 정도. 감성적이거나 겉치레같은 영상미는 없고 워낙 건조하고 메마르다 보니까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게 되는..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차이 밍량의 영화들을 보면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지독하게 건조하고 초현실적으로 고독한 영화들. 처음 봤을때는 사랑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메이가 불쌍해서 울었고 다음에 볼 때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다가갈수없어 혼자서 훌쩍이는 샤오강때문에 울었다. 엔딩에서 메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소리내어 울먹이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손꼽히는 장면인데 보다보면 같이 목놓아 울게된다. 소리도 냈다가 울음도 삼켰다가 눈물때문에 시야가 안보이다가 여러모로 날 울렸던 장면인데 영화를 여러번 볼수록 그 장면뿐만 아니라 아정과 메이의 정사 때문에 침대 밑에 숨어 우는 샤오강의 모습에도 울음이 나고 욕실에서 드레스를 입고 걷는 샤오강의 모습에 또 울음이 난다. 상처뿐인 사람들. 사랑도 할 수 없고 사랑을 받을수도 없는 현대인. 엊그제 새벽에 나눴던 대화가 또 떠오른다. 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만나는지 이해할수 없다는 나의 물음에 은지는 어른스럽게 대답해주었다. 외로우니까.
답답하다. 속도 바깥도, 명동역이고 홍대입구역이고 재빠르게 지나치고 부딪히고 사라지는 사람들, 모두 속 꺼내놓고 사랑해주면 좋을텐데 저마다 자기 방어하느라고 바쁘다. 그러다보니 서울은 더러운 먼지와 더운 공기들로 가득찬 각박한 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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